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자안(子安)

[요약정보]

UCIG002+AKS-KHF_12C790C548FFFFB1240X0
이명(異名)김미수(金彌授)
시호(諡號)자정국존(慈淨國尊)
생년1240(고종 27)
졸년1327(충숙왕 14)
시대고려후기
활동분야종교 > 불교인
출신지일선군(一善郡)

[상세내용]

자안(子安)
1240년(고종 27)∼1327년(충숙왕 14). 고려 중기의 고승(高僧). 성은 김씨(金氏). 일선군(一善郡) 출신. 뒤에 이름을 고쳐 미수(彌授)라고 하였다. 태어난 지 수일 만에 어머니가 죽어 이모가 길렀다.

9세 때 『시경』『서경』을 통달하였고, 13세 때 원흥사(元興寺) 종연(宗然)을 스승으로 모시고 중이 되어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뒤 경론(經論)을 배웠다.

1258년(고종 45) 선불장(選佛場)에 나가 상품과(上品科)에 급제한 뒤 국녕사(國寧寺)에 머물렀고, 1268년(원종 9) 삼중대사(三重大師)가 되어 『유식론(唯識論)』을 강의하였는데, 이 강의는 고려 불교계의 희귀한 일로 평가받았다.

그뒤 웅신사(熊神寺)에 있을 때 수좌(首座)가 되었고, 장의사(莊義寺)에 있을 때 승통(僧統)이 되었다.

그뒤 법주사에 있을 때에는 후학들을 위하여 장소(章疏)를 지어 세상에 유포시키도록 하라는 왕명에 따라 아직 주석서가 없는 92권의 경론을 해설하였다.

중흥사(重興寺)에 있을 때에는 충선왕으로부터 석교도승통(釋敎都僧統)의 직위와 함께 원명대사(圓明大師)라는 칭호를 받았다.

유가사(瑜伽寺)에 주석할 때에는 『대반야경(大般若經)』 신해품(信解品)을 해석하여 당시의 강사(講師)들을 깨우쳤고, 『심지관경(心地觀經)』을 주석하여 해석상의 문제를 두고 논쟁하던 것을 그치게 하였다.

왕은 크게 존경하여 그가 머물던 장의사를 일곱번이나 찾아갔고, 그에게 대자은종사 개내삼학도단주 대장의사주지 오교도승통 광지묘변불각보명대사(大慈恩宗師開內三學都壇主大莊義寺住持五敎都僧統廣智妙辯佛覺普明大師)라는 호와 양가도승통(兩街都僧統)의 직책을 내려 승정(僧政)을 담당하게 하였다. 자은종사라는 호는 그가 법상종(法相宗)의 대가임을 알려주는 자료가 되고 있다.

충숙왕은 그를 왕실내의 내전참회사(內殿懺悔師)로 봉하여 왕사(王師)로서 대우하였고, 또 왕의 청으로 대민천사(大旻天寺)에 들어가 삼가장소(三家章疏)를 강의하였으며, 1324년(충숙왕 11)에는 동화사(桐華寺)에서 오공진각묘원무애국존(悟空眞覺妙圓無礙國尊)에 숭봉(崇封)되었다.

만년에 다시 법주사에 돌아와서 머물다가 12월에 앉아서 입적하였는데, 세수 87세, 법랍(法臘) 75세였다.

탑과 비는 법주사에 세워져 있다. 시호는 자정국존(慈淨國尊)이며, 탑호(塔號)는 보명(普明)이다.

법상종의 유식사상(唯識思想)을 철저히 연구하였고, 유(儒)‧불(佛)‧선(仙) 3가에 모두 정통하여 비교강의까지 한 위대한 학승(學僧)이었으며, 당시의 승단(僧團)을 지도하던 확고한 고승이었다.

[참고문헌]

朝鮮金石總覽

[집필자]

김위석(金渭錫)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