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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朴恒)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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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박동보(朴東甫)
자(字)혁지(革之)
시호(諡號)문의(文懿)
생년1227(고종 14)
졸년1281(충렬왕 7)
시대고려후기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박항(朴恒)
1227년(고종 14)∼1281년(충렬왕 7). 고려 후기의 문신. 춘천박씨의 시조. 초명은 동보(東甫), 자는 혁지(革之).

원래 총혜(聰慧)하고 수염이 아름다웠다 한다. 고종 때 과거에 급제, 몽고군이 침입하여 춘천을 함락할 때 부친은 죽고 모친은 몽고군에 포로가 되어 연경(燕京)에 있는 것을 두번이나 구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한림원에 보직되었다가 충주 지방관이 되어 치적이 있었으므로 우정언(右正言)에 임명되었고, 경상도전라도를 안찰(按察)하여 치적에 명성이 있었다.

1269년(원종 10) 우사간(右司諫)으로 몽고에 가서 원종몽고에 들어온다는 것을 알렸으며, 이듬해 하정사(賀正使)로 몽고에 다녀왔다. 충렬왕초에 승선(承宣)이 되어 전주(銓注: 人事行政)를 관장하였는데, 그동안 정방(政房)에서 전주를 행할 때 집에 나가 잤으므로 인사를 청탁하는 자가 문전을 메웠으나 그가 처음으로 전주를 마치고 금중(禁中)을 나옴으로써 그 폐단을 없애었다.

1277년(충렬왕 3)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었으며, 그해 성절사(聖節使)원나라에 다녀왔다.

1278년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가 되었고, 그해 왕과 공주를 수행하여 원나라에 갔다가 참문학사(參文學事)가 되었다. 김주정(金周鼎)염승익(廉承益)이지저(李之氐) 등과 함께 필도치(必闍赤)가 되어 금중에서 기무(機務) 처리에 참여하였고, 그해 또 왕을 수행하여 원나라에 갔다.

1279년 찬성사(贊成事)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진사(進士)를 취하였다. 원나라세조일본을 정벌하기 위하여 전함‧군량‧기장(器仗)을 징발할 때 원나라원수 흔도(忻都), 우승(右丞) 홍다구(洪茶丘) 등이 와서 이를 감독함에 횡포가 심하므로 왕으로 하여금 원나라 세조에게 장계(狀啓)를 보내게 하여 왕을 좌승상행중서성사(左丞相行中書省事)에, 김방경(金方慶)정동도원수(征東都元帥)에 임명하게 하여 흔도홍다구의 횡포를 견제하게 하였다.

제2차 일본정벌 때 고려의 전쟁물자의 공급책과 군기(軍機)의 조치가 그에게서 나왔다. 문장을 잘하고 마음이 너그러워 사람들을 잘 접대하고 부지런히 봉공(奉公)하여 이치(吏治)에 뛰어났으나, 고집이 강하여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시호는 문의(文懿)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민병하(閔丙河)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