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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휴(李承休)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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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휴휴(休休)
호(號)동안거사(動安居士)
생년1224(고종 11)
졸년1300(충렬왕 26)
시대고려후기
본관가리(加利)
활동분야문신 > 문신
출신지경산부 가리현(京山府加利縣)
저서『제왕운기』
저서『내전록(內典錄)』

[상세내용]

이승휴(李承休)
1224년(고종 11)∼1300년(충렬왕 26). 고려의 문신. 자는 휴휴(休休), 자호(自號)는 동안거사(動安居士). 본관은 가리(加利). 경산부 가리현(京山府加利縣)사람으로 가리이씨(加利李氏)의 시조가 되었다.

12세에 원정국사(圓靜國師)의 방장(方丈)에 들어가 신서(申諝)에게서 『좌전(左傳)』『주역(周易)』 등을 익혔으며, 1252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러나 다음해에 홀어머니가 있는 삼척현(三陟縣)으로 갔다가 마침 몽고의 침략으로 길이 막히자, 그곳 두타산 구동(頭陀山龜洞)에서 몸소 농사를 지으며 홀어머니를 봉양하였다.

1263년(원종 4) 이장용(李藏用)유경(柳璥)유천우(兪千遇)원부(元傅)허공(許珙)박항(朴恒) 등에게 구관시(求官詩)를 지어 보내고, 다음해에 이장용유경의 천거를 받아 경흥부서기(慶興府書記)에 보임되었다.

1270년 삼별초가 봉기하였을 때에는 군수(軍需)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고 횡렴(橫斂)과 영선(營繕)으로 백성들이 괴로워하고 있음을 들어 그 폐해를 극론(極論)하였으며, 1273년에는 식목록사(式目錄事)로 있으면서 당시 공이 없는 사람들이 관직에 초배(超拜)되는 것이 불가하다는 상소문을 초안하였다가 오히려 파직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해에 서장관으로 발탁되어 원나라에 다녀왔으며, 이 공으로 잡직령겸 도병마녹사(雜職令兼都兵馬錄事)에 제수되었다.

다음해에 원종의 부음을 전하기 위하여 또 한번 서장관이 되어 원나라에 사행(使行)하였는데, 당시 원나라에 있던 세자가 호복(胡服)을 입고 장례를 치를 것을 염려하여 상복을 고려식으로 하도록 권유하였다.

충렬왕 때에는 합문지후(閤門祗候)감찰어사(監察御史)를 거쳐 우정언(右正言)이 되었으며, 이때 시정(時政)의 잘잘못을 15개조로 나누어 간쟁하였다.

우사간(右司諫)을 거쳐 양광충청도안렴사(楊廣忠淸道按廉使)가 되어서는 장리(贓吏) 7명을 탄핵하고 그 가산을 적몰하였다가 원한을 사게 되어 곧 동주부사(東州副使)로 좌천되었는데, 이때부터 스스로를 동안거사라 하였다.

얼마 뒤 전중시사(殿中侍史)로 임명되었으나 1280년(충렬왕 6) 감찰사의 관원들과 함께 국왕의 실정 및 국왕 측근인물들의 전횡을 들어 10개조로 간언하다가 파직되었다.

그뒤 다시 삼척현의 구동으로 돌아가 은거하면서 당호(堂號)를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있는 한 구절을 인용하여 용안당(容安堂)이라 하고, 여기서 『제왕운기』『내전록(內典錄)』을 저술하였다.

또한, 만년에는 불교에 몰입하여 용안당을 간장사(看藏寺)로 고치고 토지를 희사하기도 하였다.

1298년 충선왕이 즉위하여 개혁정치를 추진할 때 특별히 기용되어 사림시독학사 좌간의대부 사관수찬관 지제고(詞林侍讀學士左諫議大夫史館修撰官知制誥)에 임명되었으며, 곧 사림시독학사 시비서감 좌간의대부(詞林侍讀學士試祕書監左諫議大夫)를 거쳐 동첨자정원사 판비서시사 숭문관학사(同簽資政院事判祕書寺事崇文館學士)가 되었다.

그러나 70세가 넘어 현관(顯官)에 제수되는 것이 국가의 제도에 어긋남을 들어 거듭 사직을 요청하였고, 결국 같은해에 밀직부사 감찰대부 사림학사승지(密直副使監察大夫詞林學士承旨)로 치사(致仕)하였다.

저작으로서 『제왕운기』가 있고, 아들 이연종(李衍宗)이 편집한 문집 『동안거사집(東安居士集)』이 전하여지고 있다.

『제왕운기』중국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칠언시와 오언시로 엮은 서사시로서, 이승휴를 비롯한 당대의 신진사류(新進士類)들의 역사의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에 대해서는 원나라의 정치적 간섭을 받는 속에서 민족문화의 우월성과 역사전통에 대한 강렬한 자부심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자주적인 역사서라는 것에서부터, 유교사관을 내세워 원나라에 대한 사대를 합리화하는 사대적‧비자주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까지 다양한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中期의 民族敍事詩―東明王篇과 帝王韻紀의 硏究―(李佑成, 成均館大學校論文集 7, 1962;韓國의 歷史認識 上, 創作과 批評社, 1976)
蒙古壓制下의 高麗史學의 動向(金哲埈, 考古美術 129‧130合號, 1976)
李承休의 生涯와 歷史認識―帝王韻紀를 中心으로―(劉璟娥, 高麗史의 諸問題, 三英社, 1986)

[집필자]

이익주(李益柱)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