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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元宗){1}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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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명(初名)왕전(王倎)
성명왕식()
자(字)일신(日新)
시호(諡號)순효(順孝)
생년1219(고종 6)
졸년1274(원종 15)
시대고려후기
본관개성(開城)
활동분야왕실 > 왕
안혜태후 유씨(安惠太后柳氏)
정순왕후(靜順王后)
순경태후(順敬太后)
처부김약선(金若先)
묘소소릉(韶陵)

[상세내용]

원종(元宗)
1219년(고종 6)∼1274년(원종 15). 고려 제24대 왕. 재위 1260∼1274년. 성명은 왕식(王), 초명은 왕전(王倎), 자는 일신(日新). 본관은 개성(開城).

고종의 맏아들로 모친은 안혜태후(安惠太后) 유씨(柳氏)이다.

비는 장익공(莊翼公) 김약선(金若先)의 딸인 정순왕후(靜順王后)이며, 충렬왕이 즉위하여 순경태후(順敬太后)로 추존하였다.

1235년(고종 22) 태자로 책봉되어 1259년 강화를 청하기 위하여 몽고에 갔다가 그해 고종이 죽자 이듬해 귀국하여 강안전(康安殿)에서 즉위하였다.

1260년 왕자 심(諶)을 태자에 책봉하였다.

1261년 태자를 몽고에 보내 아리패가(阿里孛哥)의 평정을 축하하였는데, 왕은 그 자신이 태자 때 몽고에 다녀왔고 또 태자를 몽고에 보내는 등 몽고에 성의를 표명하여 원활한 국교수립에 노력하였다. 그해 서울동서학당(東西學堂)을 설치하였다.

1263년 홍저(洪泞)곽왕부(郭王府) 등을 일본에 보내 일본으로 하여금 해적이 고려를 침범하는 것을 단속하여주도록 청하였다.

1264년 몽고가 사신을 보내 친조(親朝)를 요구하므로 몽고에 갔다 돌아왔다.

1267년 감수국사(監修國史) 이장용(李藏用), 동수국사(同修國史) 유경(柳璥), 수찬관 김구(金坵)허공(許珙) 등으로 하여금 신종희종강종 3대의 실록을 편찬하게 하였다.

1268년 환도를 준비하기 위하여 개성출배도감(出排都監)을 설치하였다.

1269년에는 태자 몽고에 보냈으며, 친몽정책과 개성환도를 추진하다가 임연(林衍)에게 폐위당하여 동생 안경공(安慶公) 창(淐)이 왕위에 올랐으나, 의 도움으로 4개월 만에 복위되어 곧 몽고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왔다.

이해에 서경최탄(崔坦) 등이 임연(林衍)을 타도한다는 구실로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노비와 토지제도를 바로잡기 위하여 전민변정도감(田民辨整都監)을 설치하였다.

1270년 임연이 죽자 그 아들 임유무(林惟茂)교정별감에 임명하여 실권을 행사하게 하였으나, 그가 모반하므로 주살하였다. 그해 태자와 더불어 몽고로부터 돌아와 개성환도를 실현하였다.

그러나 이에 반발하여 배중손(裵仲孫)을 중심으로 한 삼별초(三別抄)가 항전을 일으키자 3년 만인 1273년에 진압하였다.

1274년 원나라의 매빙사(媒聘使)가 와서 남편이 없는 부녀자 140명을 요구하므로 결혼도감(結婚都監)을 설치하고 민간의 독녀(獨女)와 역적의 처, 종의 딸 등을 뽑아 보내어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다. 시호는 순효(順孝), 원나라의 시호는 충경(忠敬)이며 능은 소릉(韶陵)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元史

[집필자]

민병하(閔丙河)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