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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金坵)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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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김백일(金百鎰)
자(字)차산(次山)
호(號)지포(止浦)
시호(諡號)문정(文貞)
생년1211(희종 7)
졸년1278(충렬왕 4)
시대고려후기
본관부령(扶寧)
활동분야문신 > 문신
묘소부안군 산내면 운산리
저서『북정록(北征錄)』
저서『지포집』

[상세내용]

김구(金坵)
1211년(희종 7)∼1278년(충렬왕 4).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부령(扶寧). 초명은 김백일(金百鎰), 자는 차산(次山), 호는 지포(止浦).

과거에서는 모두 장원을 믿었으나 제2등으로 급제하였다. 제주판관(濟州判官)으로 있을 때 부사 최자(崔滋)는 당대의 이름난 문장가였다.

서울에서 과장(科場)의 부제(賦題)가 전달되었는데 매우 어려운 제목이었다. 최자김구에게 이 제목으로 글짓기를 청하자, 그는 담소자약하면서 즉석에서 글을 지었다. 최자는 문장에 더 가필할 것이 없으므로 탄복하여 아들에게 “이는 시부(詩賦)의 준승(準繩)이니 잘 간직하라.”고 하였다.

서장관으로 원나라에 다녀온 뒤로는 8년 동안 한원(翰院)에 재직하였고, 각문지후(閣門祗候)를 거쳐 국학직강(國學直講)이 되었을 때, 최항(崔沆)의 명으로 지은 『원각경(圓覺經)』 발문에 쓴 시가 최항의 뜻을 거슬러 좌천되었다.

그는 할아버지가 중이었기 때문에 대간이 될 수 없었으나, 그 재주를 인정받아, 1263년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가 되었고, 이어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추밀원부사정당문학(政堂文學)이부상서를 역임하였다.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올라서는 문신들의 저술을 시험하여 유능한 자에게 상을 주어 권장할 것을 건의하였고,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를 거쳐 1274년 충렬왕 즉위 뒤에는 지첨의부사(知僉議府事)참문학사(參文學事)판판도사사(判版圖司事)를 역임하였다.

당시 역관들이 간계를 부려 사실대로 통역하지 않고 사리를 꾀하는 일이 있으므로, 헌의하여 통문관(通文館)을 설치하고, 궁중 학관(學館)의 연소한 참외(參外)들로 하여금 한어(漢語)를 습득하게 하였다. 성품이 성실하여 말이 적었으나 국사를 논함에는 강직하여 어려움을 피하지 않았다.

신종희종강종고종의 실록 편찬에도 참여하였고, 당시 원나라의 간섭이 심하던 때에 일을 잘 처리하였다.

원나라에 갔을 때 『북정록(北征錄)』을 남겼고, 충렬왕『용루집(龍樓集)』에도 그의 시가 들어 있으며, 특히 변려문에 뛰어났다고 한다. 묘는 부안군 산내면 운산리에 있다.

저서로는 『지포집』이 있고,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櫟翁稗說
東文選
東人詩話
韓國漢文學史(李家源, 民衆書館, 1961)

[집필자]

박천규(朴天圭)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