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태후(文敬太后)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24BB38ACBDD0DCD1118X0 |
시호(諡號) | 자정(慈靖) |
생년 | ?(미상) |
졸년 | 1118(예종 13) |
시대 | 고려중기 |
본관 | 인천(仁川) |
활동분야 | 왕실 > 비빈 |
부 | 이자겸(李資謙) |
[상세내용]
문경태후(文敬太后)
미상∼1118년(예종 13). 고려 예종의 제2비. 본관은 인천(仁川).
조선국공(朝鮮國公)에 봉해진 이자겸(李資謙)의 둘째딸이다. 인주이씨 가문은 이자연(李子淵)이 세 딸을 문종에게 납비한 뒤 왕실과 혼인관계를 맺어오며 왕실을 능가할 정도의 위세를 부렸다. 비는 처음 연덕궁주(延德宮主)로 봉하여졌고, 1109년 인종을 낳아 왕으로부터 많은 예물을 받았다.
1114년 왕비로 책봉되었으며, 성품이 온화하고 총명하여 왕의 총애가 극진하였다. 인종 외 승덕(承德)‧흥경(興慶)의 두 궁주(宮主)를 두었다.
장지는 수릉(綏陵)이며, 시호는 순덕(順德)이다. 인종 즉위 뒤 문경왕태후로 추존되었고, 1140년(인종 18) 자정(慈靖)으로 거듭 추증되었다.
조선국공(朝鮮國公)에 봉해진 이자겸(李資謙)의 둘째딸이다. 인주이씨 가문은 이자연(李子淵)이 세 딸을 문종에게 납비한 뒤 왕실과 혼인관계를 맺어오며 왕실을 능가할 정도의 위세를 부렸다. 비는 처음 연덕궁주(延德宮主)로 봉하여졌고, 1109년 인종을 낳아 왕으로부터 많은 예물을 받았다.
1114년 왕비로 책봉되었으며, 성품이 온화하고 총명하여 왕의 총애가 극진하였다. 인종 외 승덕(承德)‧흥경(興慶)의 두 궁주(宮主)를 두었다.
장지는 수릉(綏陵)이며, 시호는 순덕(順德)이다. 인종 즉위 뒤 문경왕태후로 추존되었고, 1140년(인종 18) 자정(慈靖)으로 거듭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 慶源李氏 家門의 展開過程(李萬烈, 韓國學報 21, 1980)
高麗 慶源李氏 家門의 展開過程(李萬烈, 韓國學報 21, 1980)
[집필자]
정용숙(鄭容淑)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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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