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안인(韓安仁)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55CC548C778D1122X0 |
이명(異名) | 한교여(韓皦如) |
자(字) | 자거(子居) |
시호(諡號) | 문열(文烈) |
생년 | ?(미상) |
졸년 | 1122(예종 17) |
시대 | 고려중기 |
본관 | 단주(湍州) |
활동분야 | 관료 > 관인 |
부 | 한규(韓圭) |
[상세내용]
한안인(韓安仁)
미상∼1122년(예종 17). 고려의 관인. 본관은 단주(湍州). 초명은 교여(皦如). 자는 자거(子居). 호부시랑 한규(韓圭)의 아들이다.
숙종 때 과거에 급제, 예종이 잠저(潛邸)에 있을 때 이영(李永)‧이여림(李汝霖) 등과 함께 동궁관(東宮官)이었으므로 즉위한 뒤에 형제‧친척이 요로에 많이 등용되었다.
벼슬은 예종 때에 우부승선(右副承宣)‧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한림학사승지(翰林學士承旨)‧형부상서‧예부상서‧지추밀원사 등을 역임하였고, 인종이 즉위한 뒤에 참지정사(參知政事)를 거쳐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에 올랐다.
1112년(예종 7)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고, 1120년에는 지공거가 되어 과거를 관장하였다. 인종이 즉위하자 권력을 독점하려던 이자겸(李資謙) 일당은 선왕, 즉 예종의 동생인 대방공(帶方公) 보(俌)를 비롯해서 문공미(文公美)‧이영‧정극영(鄭克永) 등 50여명을 살해 혹은 유배하였는데, 이때 승주(昇州) 감물도(甘勿島)에 유배되었다가 죽음을 당하였다.
인종 때 이자겸 일파와 한안인 일파의 대립은 누대문벌과 신진관료세력과의 대표적인 대립현상이었다. 후일 충선왕이 즉위하여 그의 내외손과 현손에게 관직으로 포상할 것을 교서로 내렸다.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숙종 때 과거에 급제, 예종이 잠저(潛邸)에 있을 때 이영(李永)‧이여림(李汝霖) 등과 함께 동궁관(東宮官)이었으므로 즉위한 뒤에 형제‧친척이 요로에 많이 등용되었다.
벼슬은 예종 때에 우부승선(右副承宣)‧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한림학사승지(翰林學士承旨)‧형부상서‧예부상서‧지추밀원사 등을 역임하였고, 인종이 즉위한 뒤에 참지정사(參知政事)를 거쳐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에 올랐다.
1112년(예종 7)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고, 1120년에는 지공거가 되어 과거를 관장하였다. 인종이 즉위하자 권력을 독점하려던 이자겸(李資謙) 일당은 선왕, 즉 예종의 동생인 대방공(帶方公) 보(俌)를 비롯해서 문공미(文公美)‧이영‧정극영(鄭克永) 등 50여명을 살해 혹은 유배하였는데, 이때 승주(昇州) 감물도(甘勿島)에 유배되었다가 죽음을 당하였다.
인종 때 이자겸 일파와 한안인 일파의 대립은 누대문벌과 신진관료세력과의 대표적인 대립현상이었다. 후일 충선왕이 즉위하여 그의 내외손과 현손에게 관직으로 포상할 것을 교서로 내렸다.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貴族社會의 諸矛盾(金潤坤, 한국사 7, 국사편찬위원회, 1977)
高麗貴族社會의 諸矛盾(金潤坤, 한국사 7, 국사편찬위원회, 1977)
[집필자]
황운룡(黃雲龍)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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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