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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공익(崔公翊)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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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공후(公詡)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고려중기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최공익(崔公翊)
생졸년 미상. 고려 숙종 때의 문신. 별명은 공후(公詡).

첨사부(詹事府)가령(家令)개경부유수섭공부상서(攝工部尙書)공부상서 겸 서북면병마사(工部尙書兼西北面兵馬使)우복야(右僕射)를 역임하였다.

1097년(숙종 2) 왕이 교지를 내려 “과인이 망녕되이 양덕(凉德)으로써 원자를 두었으니, 마땅히 태자의 위(位)에 올릴 것이라.”하고 유사(有司)에 특명하여 태자를 세우고, 첨사부 좌춘방(左春坊) 연경궁사(延慶宮司) 등의 궁(宮)을 갖추어 노예와 식읍(食邑)을 이에 예속시키고 그로 하여금 가령을 삼았다.

1102년에 왕이 그에게 명하여 유수(留守)의 창고내에 있는 서적을 검토하여 올리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집필자]

이상선(李相瑄)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