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위(張文緯)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A5BB38C704D1134X0 |
생년 | ?(미상) |
졸년 | 1134(인종 12) |
시대 | 고려중기 |
본관 | 홍천(洪川)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제망(齊望) |
조부 | 장진(張瑨) |
[상세내용]
장문위(張文緯)
미상∼1134년(인종 12). 고려의 문신. 본관은 홍천(洪川).
상사봉어(尙舍奉御) 장진(張瑨)의 손자로, 검교군기소감(檢校軍器少監) 제망(齊望)의 아들이다.
처음 고조의 음서(蔭敍)로 서리(胥吏)에 올라 내시로 있다가 과거에 급제한 뒤 명복궁녹사(明福宮錄事)‧사문조교(四門助敎)를 역임하였다.
1109년(예종 4) 행영병마녹사(行營兵馬錄事)로서 숭녕진(崇寧鎭: 함경남도 함주)에서 여진인 38명을, 또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정변분도(靜邊分道)로서 종군하여 6명을 참수하는 공을 세웠다.
그 공로로 액정내알자(掖庭內謁者)에 오르고, 숭명부주부(崇明府注簿)‧시합문지후(試閤門祗候)를 거쳐 수주(樹州)의 장관으로 정적(政績)이 있었다.
1118년 감찰어사로서 서경유수통판(西京留守通判)이 된 뒤 호부낭중 시사재소경(戶部郞中試司宰少卿)을 거쳐 예부상서에 올랐다.
상사봉어(尙舍奉御) 장진(張瑨)의 손자로, 검교군기소감(檢校軍器少監) 제망(齊望)의 아들이다.
처음 고조의 음서(蔭敍)로 서리(胥吏)에 올라 내시로 있다가 과거에 급제한 뒤 명복궁녹사(明福宮錄事)‧사문조교(四門助敎)를 역임하였다.
1109년(예종 4) 행영병마녹사(行營兵馬錄事)로서 숭녕진(崇寧鎭: 함경남도 함주)에서 여진인 38명을, 또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정변분도(靜邊分道)로서 종군하여 6명을 참수하는 공을 세웠다.
그 공로로 액정내알자(掖庭內謁者)에 오르고, 숭명부주부(崇明府注簿)‧시합문지후(試閤門祗候)를 거쳐 수주(樹州)의 장관으로 정적(政績)이 있었다.
1118년 감찰어사로서 서경유수통판(西京留守通判)이 된 뒤 호부낭중 시사재소경(戶部郞中試司宰少卿)을 거쳐 예부상서에 올랐다.
[참고문헌]
高麗史節要
韓國金石文追補(李蘭暎編, 亞細亞文化社, 1986)
韓國金石文追補(李蘭暎編, 亞細亞文化社, 1986)
[집필자]
박성봉(朴性鳳)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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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