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상∼1126년(인종 4). 고려의 외척권세가.

본관은 인천(仁川).

호부낭중(戶部郞中)을 지낸 이호(李顥)의 아들이다.

경원이씨는 나말여초의 인주 지방 호족세력으로서, 이허겸(李許謙)의 외손녀가 현종의 비로 책봉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지만, 귀족가문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은 이자겸의 할아버지인 이자연(李子淵) 때부터였다.

왕실과의 혼인을 통하여 문벌귀족으로 성장하여 이자겸의 누이 중 장경궁주(長慶宮主)는 순종의 비가 되었고, 부인은 해주최씨(海州崔氏)로 수상을 역임한 사추(思諏)의 딸이다.

이와같은 가문을 배경으로 그는 음서(蔭敍)로 진출, 초직으로는 매우 파격적인 합문지후(閤門祗候)를 제수받았다.

그러나 더욱 빠른 속도로 출세하게 되는 것은 그의 둘째딸이 예종의 비로 들어가면서였다.

그뒤 참지정사(參知政事)‧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거쳐 개부의동삼사 수사도 중서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開府儀同三司守司徒中書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로 진급하며, 곧 이어 다시 소성군개국백(邵城郡開國伯)에 봉작 됨과 아울러 여러 아들들도 승질되는 특전이 베풀어졌다.

이와같이, 예종 때부터 권력의 핵심에 참여하게 되지만 아직 정계를 쥐고 흔들만한 위치에는 있지 못하였다. 국왕인 예종이 귀족관료 전체의 대표자로서 그들을 일정한 균형 위에서 조절하여 어느 한쪽의 독주를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왕의 주변에서 한안인(韓安仁)일파가 세력을 펴고 이자겸 일파와 대립, 암투하고 있었던 사실이 그와같은 면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예종이 재위 17년 만에 죽고 그의 외손이 되는 인종이 어린 나이로, 그것도 이자겸의 보필에 힘입어 왕위에 오르게 되자 양상은 크게 달라지게 되었다. 새 왕이 등극하자, 우선 협모안사공신 수태사 중서령 소성후(協謀安社功臣守太師中書令邵城侯)를 책봉받아 인신(人臣)으로서는 최고직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12월에는 반대파 제거에 나서 왕의 작은아버지인 대방공(帶方公) 보(俌)와 한안인‧문공인(文公仁) 등이 역모를 꾀하였다는 명목을 내세워 주모자와 그 일당 50여명을 살해 또는 유배하였다.

그리하여 왕의 극진한 우대를 받게 되어 양절익명공신 중서령 영문하상서도성사 판이병부 서경유수사 조선국공 식읍팔천호 식실봉이천호(亮節翼命功臣中書令領門下尙書都省事判吏兵部西京留守事朝鮮國公食邑八千戶食實封二 千戶)에 제수되고 관부(官府)를 열어 요속(僚屬)을 두기에 이르며, 부인은 진한국대부인(辰韓國大夫人)에 봉해지는 한편 여러 아들들의 관직도 승급되어 그의 일문은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고려사회는 종래와 같은 귀족관료 내부간의 균형이 깨어지고 왕권의 상대적인 약화까지 초래하게 되었다.

인종 1년에 송나라 사신을 따라 왔던 서긍(徐兢)은 그의 견문록인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이자겸을 평하여, “풍채는 맑고 위의는 온화하며 어질고 착한 이들을 반겼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때가 이자겸이 한창 득세하고 있던 시기인 만큼 서긍의 눈에 그와같이 비쳤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에게서 군자풍의 태도와 행동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외형상의 이와같은 모습과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는 재물과 권력에 지나치게 욕심이 많았던 것은 사실인듯싶다. 『고려사』 이자겸전에 의하면, 그는 “남의 토전(土田)을 강탈하고, 복예(僕隷)들을 풀어놓아 마차와 말을 약탈하여 자기의 물건을 날랐다.”고 하며, 권세를 부리며 공공연히 뇌물을 받았다고 한다. 좀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집에는 “썩어가는 고기가 항상 수만 근이나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내용은 『고려도경』에도 전해지고 있다. 권력면에서도 그는 경원이씨 이외의 다른 성씨에서 왕비가 나오면 권세와 총애가 분산될까 염려하여 왕에게 강청(强請), 셋째 딸을 왕비로 들여보내고, 얼마 뒤에는 다시 넷째딸을 왕비로 들여보냈던 데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어쨌든 강력한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토대 및 당시 또 하나의 큰 세력을 이루고 있던 사원과의 긴밀한 유대 등을 바탕으로 정계를 마음대로 움직였을 뿐더러, 왕권에까지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는 한때 사사로이 자기 부(府)의 주부(注簿)인 소세청(蘇世淸)을 송나라에 보내어 표(表)를 올리고 토산물을 바치며 스스로 지군국사(知軍國事)를 칭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지군국사가 되고자 하여 왕이 자기 집에 와서 그 조칙을 내려줄 것을 요청하고 날짜까지 정하였다. 지군국사란 나라의 모든 일을 맡고 있다는 뜻으로 인신은 대유(帶有)할 수 없는 직함이었다.

이같은 전횡에 대하여 왕도 몹시 꺼리고 있었다. 이를 안 내시 김찬(金粲)과 안보린(安甫鱗)은 동지추밀원사 지녹연(智祿延)과 공모하여 왕에게 아뢰고, 상장군 최탁(崔卓)과 오탁(吳卓), 대장군 권수(權秀), 장군 고석(高碩)과 함께 이자겸과 그의 일당인 척준경(拓俊京) 등을 제거하려는 거사에 나서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약속된 날 밤에 군사를 거느리고 궁궐로 들어가, 우선 척준경의 동생인 병부상서 척준신(拓俊臣)과 아들인 내시 척순(拓純) 등을 살해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이자겸의 난’의 발단이었다.

변란을 알게 된 이자겸과 척준경은 당여와 병졸을 이끌고 가서 궁성을 포위한 뒤 불을 지르고 많은 사람들을 살해하였다. 이에 놀란 왕은 해를 입을까 두려워하여 글을 지어 이자겸에게 선위(禪位)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양부(兩府)의 의론을 겁내었고, 한편으로는 재종형제간으로 그의 발호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이수(李需)와 귀족관료인 김부식 등의 반대로 저지되었다.

그뒤 왕을 자기 집으로 이어(移御)하게 하고는 국사를 제멋대로 처리하였다. 마침 이때 군신관계를 요구해온 금나라에 대하여 모든 신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기의 권력유지를 위하여 사금책(事金策)을 결정한 것이 그같은 한 예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아직까지 왕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고 인종을 여러 차례 독살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왕비의 기지로 왕은 겨우 화를 면할 수가 있었다.

이와같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인종의 밀명을 받은 내의(內醫) 최사전(崔思全)이 이자겸과 척준경의 사이를 떼어놓는 데 성공하여 척준경에 의하여 거세된 이자겸은 유배지인 영광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