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응(李元膺)
[상세내용]
이원응(李元膺)
미상∼1160년(의종 14). 고려의 문신.
1147년(의종 1) 우사간을 지냈고, 1151년에는 기거주(起居注)로서 폐신(嬖臣) 김존중(金存中)과 결탁하여 외척 정서(鄭敍)의 죄를 논하였다.
김존중 및 환관 정함(鄭諴)과 함께 왕의 총애를 받아 권세를 부렸으며, 1156년에는 낭장 최숙청(崔淑淸)이 이들을 살해하려다 발각되어 유배되는 사건이 있었다.
우승선으로서 1154년의 국자감시(國子監試)와 1156년의 예부시(禮部試)를 각각 주관하였다. 곧 좌승선 직문하성(左承宣直門下省)으로 옮겼으며, 1157년 왕이 정함을 권지합문지후(權知閤門祗候)에 제수하려 하자 그 고신(告身)에 서명하였다.
그뒤 지주사(知奏事)를 거쳐 추밀원부사에 올랐고, 1160년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제수되었으나 바로 그날 죽었다.
1171년(명종 1) 일찍이 환관 정함의 고신에 서명하였던 일로 간관들의 탄핵을 받아 자손을 금고(禁錮)하는 조치가 취하여졌다.
1147년(의종 1) 우사간을 지냈고, 1151년에는 기거주(起居注)로서 폐신(嬖臣) 김존중(金存中)과 결탁하여 외척 정서(鄭敍)의 죄를 논하였다.
김존중 및 환관 정함(鄭諴)과 함께 왕의 총애를 받아 권세를 부렸으며, 1156년에는 낭장 최숙청(崔淑淸)이 이들을 살해하려다 발각되어 유배되는 사건이 있었다.
우승선으로서 1154년의 국자감시(國子監試)와 1156년의 예부시(禮部試)를 각각 주관하였다. 곧 좌승선 직문하성(左承宣直門下省)으로 옮겼으며, 1157년 왕이 정함을 권지합문지후(權知閤門祗候)에 제수하려 하자 그 고신(告身)에 서명하였다.
그뒤 지주사(知奏事)를 거쳐 추밀원부사에 올랐고, 1160년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제수되었으나 바로 그날 죽었다.
1171년(명종 1) 일찍이 환관 정함의 고신에 서명하였던 일로 간관들의 탄핵을 받아 자손을 금고(禁錮)하는 조치가 취하여졌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節要
[집필자]
이익주(李益柱)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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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