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재(朴晉材)
[상세내용]
박진재(朴晉材)
미상∼1207년(희종 3). 고려 무신집권기의 무신. 최충헌(崔忠獻)의 생질이다.
1196년(명종 26) 대정(隊正)으로 있으면서 최충헌 형제를 도와 이의민(李義旼)을 제거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 때문에 곧 별장(別將)이 되었으며, 다음해 최충헌 형제와 모의하여 명종을 폐위하고 신종을 옹립하였다.
신종이 즉위한 직후 형부시랑으로 승진하였으며, 최충헌과 최충수(崔忠粹) 형제가 대립하자 최충헌을 지지함으로써 최충헌이 전권을 장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수백명의 문객(門客)을 거느리고 있으면서 최충헌과 협력하였으나, 최충헌이 정권을 장악한 이후 이 문객들 가운데에는 관직을 얻은 사람이 적어 불만을 품게 되었으며, 1201년(신종 4) 박진재가 최충헌을 없애려 한다는 익명서가 나붙어 두 사람 사이의 불화가 시작되었다.
그뒤 1203년 상서우승(尙書右丞)이 되고, 다시 대장군에 올랐지만, 1207년(희종 3) 최충헌에 의하여 백령진(白翎鎭)으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1196년(명종 26) 대정(隊正)으로 있으면서 최충헌 형제를 도와 이의민(李義旼)을 제거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 때문에 곧 별장(別將)이 되었으며, 다음해 최충헌 형제와 모의하여 명종을 폐위하고 신종을 옹립하였다.
신종이 즉위한 직후 형부시랑으로 승진하였으며, 최충헌과 최충수(崔忠粹) 형제가 대립하자 최충헌을 지지함으로써 최충헌이 전권을 장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수백명의 문객(門客)을 거느리고 있으면서 최충헌과 협력하였으나, 최충헌이 정권을 장악한 이후 이 문객들 가운데에는 관직을 얻은 사람이 적어 불만을 품게 되었으며, 1201년(신종 4) 박진재가 최충헌을 없애려 한다는 익명서가 나붙어 두 사람 사이의 불화가 시작되었다.
그뒤 1203년 상서우승(尙書右丞)이 되고, 다시 대장군에 올랐지만, 1207년(희종 3) 최충헌에 의하여 백령진(白翎鎭)으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節要
[집필자]
이익주(李益柱)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