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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제(金希磾)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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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1227(고종 14)
시대고려중기
활동분야군인 > 장군

[상세내용]

김희제(金希磾)
미상∼1227년(고종 14). 고려의 장군.

본래 군산도(群山島) 사람이었으나, 조상이 상선(商船)을 따라 개성에 정착하게 됨으로써 적(籍)을 개성으로 하였다. 처음 감수직(監收直)으로 있다가 산원에 보직되고, 충청도안찰사(忠淸道按察使)로 승진하였는데, 청렴하다고 하여 장군이 되었다.

1221년(고종 8) 담략이 있고 시와 예를 잘 안다 하여 횡포가 심한 몽고 사신 저고여(著古與)접반사(接伴使)가 되어 무리없이 접대하였다.

또, 그해 몽고 사신들이 대관전(大觀殿)에서 왕이 베푸는 잔치에 궁시(弓矢)를 차고 임석하려는 것을 설득하여 풀게 하였고, 동진(東眞)의 사신을 응대할 때는 시로써 응하여 그들을 감복시켰다.

1223년 의주분도장군(義州分道將軍)이 되었는데, 이때 금나라오가하(于哥下)가 침입하자 이를 격퇴하고 서북면병마부사(西北面兵馬副使)로 승진하였다.

1226년 서북면병마부사로 있을 때, 또 오가하의 군대가 의주정주(靜州)인주(麟州) 등지를 침범하므로 그를 물리치는 한편, 보기(步騎) 1만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석성(石城)을 쳐서 항복을 받았다.

이듬해 전라도순문사(全羅道巡問使)가 되었는데, 이때 최우(崔瑀)를 해치려 했다는 참소를 받았다. 최우가 사람을 나주에 보내어 체포하려고 하자 아들 셋과 함께 바다에 투신, 자살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민병하(閔丙河)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