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상∼1135년(인종 13).
고려 중기의 문신. 초명은
김찬(金粲).
1126년 2월 근신인
내시지후(內侍祗候)로서 외척
이자겸(李資謙)을 제거하려고
상장군 최탁(崔卓)‧
오탁(吳卓),
대장군 권수(權秀) 등과 거사하였으나 실패하여 유배되었다.
5월
이자겸이 실각하자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에 올랐다.
그뒤
정지상(鄭知常)‧
묘청(妙淸) 등과 함께 칭제(稱帝)와 금국정벌(金國征伐)을 주장하였고,
묘청을 성인으로 받들어 적극 추천하였다.
그러나 1135년(인종 13)
묘청의 서경반란에 가담한 죄로
김부식(金富軾)에게 참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