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소(德素)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B355C18CFFFFB1119X0 |
이명(異名) | 전자미(田子美) |
자(字) | 혜약(慧約) |
시호(諡號) | 원각(圓覺) |
생년 | 1119(예종 14) |
졸년 | 1174(명종 4) |
시대 | 고려중기 |
활동분야 | 종교 > 불교인 |
모 | 양씨(梁氏) |
[상세내용]
덕소(德素)
1119년(예종 14)∼1174년(명종 4). 고려 명종 때의 왕사(王師)로 천태학의 대가. 성은 전씨(田氏). 이름은 자미(子美). 자는 혜약(慧約). 모친은 양씨(梁氏)이다.
9세 때 의천(義天)의 제자로 국청사(國淸寺)에 있었던 교웅(敎雄)에 의하여 득도하였다.
교웅은 그의 자질을 인정하여 천태종을 융성하게 할 인물이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하루는 대장당(大藏堂)에 들어가 장경함을 열고 책을 보다가 문득 그 뜻을 통달하였다고 한다. 인종도 그의 자질에 감탄하여 뒷날 반드시 대법사가 될 것이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그뒤 1142년(인종 20) 울주(蔚州)에 있는 영취산(靈鷲山)에 머무르면서 많은 학승들을 지도하였다.
1153년(의종 7) 선사(禪師)가 되었다가 곧 대선사(大禪師)로 임명되었고 1170년 왕사가 되었으며, 55세로 서쪽을 향하여 앉은 채 입적하였다. 문하에서는 많은 천태의 고승들이 배출되었다. 선사의 법계를 받은 승지(承智)를 비롯하여 재사(再思)‧담요(曇曜)‧의윤(顗胤)‧신수(神秀) 등 1,200명의 제자들이 나와 고려 천태종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시호는 원각(圓覺)이며, 충청북도 영동군 영국사(寧國寺)에 비가 있다.
9세 때 의천(義天)의 제자로 국청사(國淸寺)에 있었던 교웅(敎雄)에 의하여 득도하였다.
교웅은 그의 자질을 인정하여 천태종을 융성하게 할 인물이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하루는 대장당(大藏堂)에 들어가 장경함을 열고 책을 보다가 문득 그 뜻을 통달하였다고 한다. 인종도 그의 자질에 감탄하여 뒷날 반드시 대법사가 될 것이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그뒤 1142년(인종 20) 울주(蔚州)에 있는 영취산(靈鷲山)에 머무르면서 많은 학승들을 지도하였다.
1153년(의종 7) 선사(禪師)가 되었다가 곧 대선사(大禪師)로 임명되었고 1170년 왕사가 되었으며, 55세로 서쪽을 향하여 앉은 채 입적하였다. 문하에서는 많은 천태의 고승들이 배출되었다. 선사의 법계를 받은 승지(承智)를 비롯하여 재사(再思)‧담요(曇曜)‧의윤(顗胤)‧신수(神秀) 등 1,200명의 제자들이 나와 고려 천태종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시호는 원각(圓覺)이며, 충청북도 영동군 영국사(寧國寺)에 비가 있다.
[참고문헌]
朝鮮金石總覽 上
韓國佛敎史(禹貞相‧金煐泰, 新興出版社, 1976)
韓國佛敎史(禹貞相‧金煐泰, 新興出版社, 1976)
[집필자]
서윤길(徐閏吉)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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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