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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부(金永夫)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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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096(숙종 1)
졸년1172(영종 2)
시대고려중기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김영부(金永夫)
1096년(숙종 1)∼1172년(영종 2). 고려 중기의 문신.

1148년(의종 2) 이식(李軾)과 함께 사신으로 금나라에 가서 책봉을 사례하였다.

1151년에 간관(諫官)으로 있으면서 재상 최유청(崔惟淸)문공원(文公元) 등과 함께 의종의 아우인 대녕후 경(大寧侯暻)태후(太后)의 매서(妹婿)인 내시낭중(內侍郞中) 정서(鄭敍)가 서로 결탁하여 연락유희(宴樂遊戱)한다고 탄핵하였다.

대녕후 경인종의 둘째아들로서 도량이 있어 중심(衆心)을 얻었으므로 당시 일부에서는 왕으로 추대될 것이라는 의심을 받기도 했었다. 환자(宦者) 정함(鄭諴)과 간신(諫臣) 김존중(金存中)대녕후와 친한 정서와 사이가 좋지 못하였으므로 대녕후정서를 모함했던 것인데, 재상 최유청, 간관 김영부 등이 이 모함을 그대로 탄핵하여 결국 정서동래로 귀양가고 대녕후는 파하게 되었다.

1157년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태자빈객(太子賓客)이 되었다.

1160년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동지공거(同知貢擧) 이지심(李知深)과 함께 최효저(崔孝著) 등 진사 33인과 명경(明經) 3인을 뽑았다.

이듬해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가 되었으며 다시 이듬해 참지정사(參知政事) 판상서병부사(判尙書兵部事), 1164년 중서시랑(中書侍郞)중서평장사(中書平章事)가 되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집필자]

민병하(閔丙河)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