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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항(鄭沆)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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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자림(子臨)
시호(諡號)문안(文安)
생년1080(문종 34)
졸년1136(인종 14)
시대고려중기
본관동래(東萊)
활동분야문신 > 문신
정목(鄭穆)
처부왕국모(王國髦)

[상세내용]

정항(鄭沆)
1080년(문종 34)∼1136년(인종 14). 고려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자림(子臨).

호장의 자손으로 중앙에 진출하여 섭대부경(攝大府卿)이 된 정목(鄭穆)의 넷째아들이며, 정서(鄭敍)의 아버지이고, 숙종 때 공신인 왕국모(王國髦)의 사위이다.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상주사록(尙州司錄)에 임명되었는데, 나이가 적으나 잘 판단하여 정극영(鄭克永)한충(韓沖)과 더불어 사록으로는 이정 일한(二鄭一韓)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이어 직한림원(直翰林院)이 되었다가 예종내시(內侍)에 속하였고, 1116년(예종 11) 집주(執奏)를 맡아 공평 정직하며 출납(出納)에 상세하고 밝았다.

이자량(李資諒)을 수행하여 송나라에 갔을 때 관반학사(館伴學士) 왕보(王黼)가 표장(表章)을 보고 칭송하였고, 귀국한 이듬해 우정언에 올랐으나 강직하여 뜻을 굽히지 않아 전주통판(全州通判)으로 좌천되었다.

이어 우사간을 거쳐 양광(楊廣)충청도안찰사를 역임하였다. 인종이자겸(李資謙)이 집권하였으나 아부하지 않아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로 좌천되었다.

1126년(인종 4) 이자겸이 몰락한 이듬해 『서경(書經)』의 열명(說命)‧주관편(周官篇)을 강의하고, 1129년 서적소(書籍所)에서 송조(宋朝)의 『충의집(忠義集)』을 강독하였다.

1132년 기린각(騏麟閣)에서 『예기(禮記)』 중용편(中庸篇)을 강의하였고, 이어 왕이 묘청(妙淸)의 건의로 서경에 행차하였을 때 묘청정지상(鄭知常)이 왕을 오래 머물게 할 의도로 간관들을 풍유하여 개경의 궁궐수리를 중지하기를 청하자, 2회의 소(疏)를 올려 궁궐수리와 환어(還御)를 요청하여 받아들여졌다.

이해에 지공거(知貢擧) 최자성(崔滋盛)이 시제(試題)를 잘못 내어 유사(有司)가 파할 것을 청하자, 거자(擧子)김이영(金貽永)이 사위이며 왕비의 모제(母弟)가 되므로 공예태후(恭睿太后)한유충(韓惟忠)과 더불어 간청하여 파하지 않게 하였다.

1135년 우승선(右承宣)으로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허홍재(許洪材) 등을 합격시켰다. 이해에 수락당(壽樂堂)에서 한림학사로서 『시경』의 7월편(七月篇)을, 이듬해에는 천성전(天成殿)에서 『당감(唐鑑)』을 강독하였다.

1136년 지추밀원사 예부상서 한림학사승지로 승진되었으나 이튿날 죽었다. 시호는 문안(文安)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韓國金石文追補

[집필자]

박성봉(朴性鳳)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