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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항(元沆)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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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천계(天啓)
생년1080(문종 34)
졸년1149(의종 3)
시대고려중기
본관원주(原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원구(元寇)
묘소건덕산(健德山)

[상세내용]

원항(元沆)
1080년(문종 34)∼1149년(의종 3). 고려의 문신.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천계(天啓). 태자첨사(太子詹事) 원구(元寇)의 아들이다.

1107년(예종 2) 과거에 급제하였는데, 학문으로 이름을 떨쳐 왕의 신임을 얻었다.

1110년 합주통판(陜州通判)이 되었다가 임기가 끝나자 권지직사관(權知直史館)이 되었으며, 다시 옮겨 어서유원관(御書留院官)을 지냈다.

이어 맹주부사를 역임하고, 1130년(인종 8)에는 소부주부(小府主簿)로서 추밀원당후관(樞密院堂後官)을 겸임하였다.

1132년 합문지후(閤門祗侯)를 거쳐 이듬해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로서 서경유수판관에 올랐다가 이어 상의봉어(尙衣奉御)가 되었다. 서경인 묘청(妙淸)조광(趙匡) 등이 서경천도를 꾀하므로 이들의 처벌을 엄중히 주장하다가 남경소윤(南京少尹)으로 전직되었으나 곧 복직되었다.

1135년 안변도호부부사(安邊都護府副使)가 되었으며, 상사봉어(尙舍奉御)를 거쳐 병부형부원외랑(員外郞)을 역임하였다.

1145년 사재소경(司宰少卿)에 제수되었고, 이어 공부시랑에 임명되었으나 규정에 어긋난다는 유사(有司)의 반대 때문에 장작감(將作監)에 취임하였다.

1147년(의종 1) 예부시랑에 올라 어서검토관(御書檢討官)을 겸하였으며, 이어 국자좨주(國子祭酒)가 되었는데 이듬해 조청대부(朝請大夫)를 가수(加授)받고 여러 번 표문(表文)을 올려 치사(致仕)할 것을 청한 끝에 드디어 검교태자태보(檢校太子太保)로 치사하여 정3품의 녹봉을 받았다.

용흥사(龍興寺) 덕현원(德賢院)에서 죽자 건덕산(健德山) 서쪽에 장사지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朝鮮金石總覽

[집필자]

박옥걸(朴玉杰)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