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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연(坦然)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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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묵암(黙庵)
시호(諡號)대감(大鑑)
생년1070(문종 24)
졸년1159(의종 13)
시대고려중기
활동분야종교 > 불교인
손숙(孫肅)
출신지밀양

[상세내용]

탄연(坦然)
1070년(문종 24)∼1159년(의종 13). 고려시대의 고승(高僧). 성은 손씨(孫氏). 호는 묵암(黙庵). 밀양 출신. 교위(校尉) 손숙(孫肅)의 아들이다.

13세에 6경(經)의 대의(大義)에 통하였고, 1085년(선종 2) 명경과(明經科)에 합격하였다.

번저(藩邸)에 있던 숙종의 초청으로 세자를 보도(輔導)하다가, 1088년 궁중에서 몰래 나와 경북산 안적사(安寂寺)로 출가하였다.

그뒤 광명사(廣明寺)의 혜소국사(慧炤國師) 정현(鼎賢)의 문하에 들어가서 공부하다가 심요(心要)를 전해 받고 다시 총림(叢林)을 두루 방문하며 증득한 바를 단련하였는데, 모든 학자들이 그를 경모하였다.

뒤에 늙은 어머니 때문에 멀리 떠나지 못하고 외산(外山)에 조그마한 절을 구하여 봉양하였다.

1104년(숙종 9) 대선(大選)에 합격하여 왕명에 따라 중원(中原) 의림사(義林寺)주지가 되었고, 1106년(예종 1)에는 대사(大師), 1109년에는 중대사(重大師), 1115년에는 삼중대사(三重大師)가 되었으며, 1117년 선암사(禪巖寺)에 머물렀다.

1121년 선사(禪師)가 되었고, 1123년(인종 1) 인종에게서 첨수가사(添繡袈裟)를 하사받았으며, 1129년 보리연사(菩提淵寺)의 주지가 되어 법회(法會)를 개설하였다. 보리연사에는 뱀이 많아서 다니는 사람들의 곤란이 대단하였는데, 그가 법회를 열고 난 다음부터는 뱀들이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1132년 대선사(大禪師)가 된 뒤부터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왕의 자문(諮問)에 응하였고, 1146년 왕사(王師)가 되었다.

1148년 단속사(斷俗寺)로 돌아가 은퇴한 뒤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여 선교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한때 「사위의송(四威儀頌)」과 「상당어구(上堂語句)」를 지어 중국 광리사의 개심(介諶)에게 보냈더니, 개심은 지극한 찬탄과 함께 가사와 의발을 법의 신표로 보냈다.

1159년 제자들을 불러서 “내가 가는 곳은 내가 벌써 잘 알고 있으니, 너희들은 당초에 세속의 본을 떠서 소기(小忌)‧대기제(大忌祭)를 지내지 말고, 사십구재(四十九齋)‧백일재 등의 명재(明齋)도 지내지 말고 오직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훈계를 한 뒤 합장하고 입적(入寂)하였다.

서예에도 조예가 뛰어나 왕희지의 필체를 따랐는데, 춘천 청평사(淸平寺) 문수원(文殊院)의 중수비와 예천군의 복룡사비, 삼각산 승가사중수비 등을 썼다. 서거정(徐居正)이 동국의 필법은 김생(金生)이 제일이고 요극일(姚克一)탄연영업(靈業)이 다음 간다고 평할 만큼 그의 글씨는 뛰어났다.

국사(國師)로 추증(追贈)되었고 시호는 대감(大鑑)이며, 1172년(명종 2) 단속사에 건립한 비가 남아 있다.

저서로는 시문집이 있었다고 하나 현존하지 않는다.

[참고문헌]

補閑集
朝鮮金石總覽
朝鮮佛敎通史(李能和, 新文館, 1918)

[집필자]

박상국(朴相國)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