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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任懿)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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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충공(忠恭)
시호(諡號)정경(貞敬)
생년1041(정종 7)
졸년1117(예종 12)
시대고려중기
본관장흥(長興)
활동분야관료 > 명신
임임호(任任顥)

[상세내용]

임의(任懿)
1041년(정종 7)∼1117년(예종 12). 고려의 명신.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충공(忠恭). 상서공부원외랑(尙書工部員外郞) 임호(任顥)의 아들이다.

과거에 급제한 뒤 당시 태자로 있던 선종의 추천으로 전첨(典籤)이 되고, 선종이 즉위하자 여러번 벼슬을 옮겨 우승선에까지 올랐다.

1095년(헌종 1) 헌종의 즉위를 고하러 요나라에 다녀왔고, 숙종초에 사감이 있던 환관의 참소를 여러번 당하였으나 왕의 신임으로 무사하였다.

1100년(숙종 5) 송나라철종이 죽자 조문사절송나라에 갔을 때 일행은 모두 재물을 탐하였으나 홀로 청렴, 근실하였으므로 중국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이듬해 돌아오면서 황제가 하사한 『신의보구방(神醫普救方)』을 가지고 오니 그 공으로 작위를 받고 이어 어사대부(御史大夫)에 제수되었다.

1104년 동지추밀원사로 승진하여 재상의 서열에 오르고, 이듬해 추밀원사 이부상서(樞密院使吏部尙書)가 되고, 같은해에 참지정사(參知政事)를 겸하였으며, 이어 평장사(平章事)에 승진되었다.

1109년(예종 4) 평장사 최홍사(崔弘嗣) 등과 함께 윤관(尹瓘)오연총(吳延寵)을 공격하여 윤관이 물러나 있는 동안 권판상서이부사(權判尙書吏部事)가 되었으며, 윤관이 쌓은 9성을 환부(還附)할 때 뒷마무리를 맡아 처리하였다.

이듬해 문하시랑평장사로 치사하였다. 학문이 뛰어나 사관과 한림원을 역임하였고, 지공거(知貢擧)를 거쳤다.

세 아들 원숙(元淑)원후(元厚)원준(元濬) 등이 모두 재상 내지는 수상의 지위에 올라 고려 전기의 대표적 명문의 하나로 등장하게 되었으니, 임의정안임씨의 중흥조라 할 수 있다. 중서령(中書令)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정경(貞敬)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朝鮮金石總覽
高麗時代土姓硏究(李樹健, 亞細亞學報 12, 1976)
高麗時代의 定安任氏‧鐵原崔氏‧孔巖許氏家門分析(朴龍雲, 韓國史論叢 3, 1978)

[집필자]

박용운(朴龍雲)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