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남원부인(淸州南院夫人)
[상세내용]
청주남원부인(淸州南院夫人)
생졸년 미상. 고려 제3대왕 정종의 제3비. 청주사람으로 원보(元甫) 김긍률(金兢律)의 딸이며, 혜종의 제3비 청주원부인(淸州院夫人)과 자매간이다. 청주는 신라 5소경 가운데 서원경(西原京)이 있던 곳으로서, 일찍부터 지방관부와 학교를 따로 설치, 운영할 수 있을 만큼 독자적 지방세력이 그 기반을 구축하여왔던 곳이었다.
그리고 태조가 고려를 건국한 직후 청주인의 반란이 거듭 시도되었을 정도로 반고려적 성향을 나타내고 있었으므로, 태조는 여러 차례 청주에 행차하여 이 지역의 민심수습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청주 지방 호족의 딸이 왕실과 혼인을 맺기 시작한 것은 이러한 태조의 노력이 결실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혜종에 이어 정종이 다시 김긍률의 딸과 혼인을 맺게 된 데에는 혜종대의 정국동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945년(혜종 2)에 왕규(王規)가 왕의 아우인 요(堯:정종)와 소(昭:광종)가 반역을 꾀하고 있다고 참소하자, 혜종은 아우에 대한 신뢰의 표시로 자신의 딸인 공주를 둘째 아우인 소에게 출가시켰다고 하였다. 그 경우 큰 동생인 요에게도 상당한 배려가 필요할 것이며, 따라서 혜종은 자신의 처제를 요의 배필로 삼게 하였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태조가 고려를 건국한 직후 청주인의 반란이 거듭 시도되었을 정도로 반고려적 성향을 나타내고 있었으므로, 태조는 여러 차례 청주에 행차하여 이 지역의 민심수습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청주 지방 호족의 딸이 왕실과 혼인을 맺기 시작한 것은 이러한 태조의 노력이 결실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혜종에 이어 정종이 다시 김긍률의 딸과 혼인을 맺게 된 데에는 혜종대의 정국동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945년(혜종 2)에 왕규(王規)가 왕의 아우인 요(堯:정종)와 소(昭:광종)가 반역을 꾀하고 있다고 참소하자, 혜종은 아우에 대한 신뢰의 표시로 자신의 딸인 공주를 둘째 아우인 소에게 출가시켰다고 하였다. 그 경우 큰 동생인 요에게도 상당한 배려가 필요할 것이며, 따라서 혜종은 자신의 처제를 요의 배필로 삼게 하였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王室族內婚硏究(정용숙, 새문社, 1988)
高麗初 淸州地方의 豪族(金周成, 韓國史硏究 61‧62, 1988)
高麗王室族內婚硏究(정용숙, 새문社, 1988)
高麗初 淸州地方의 豪族(金周成, 韓國史硏究 61‧62, 1988)
[집필자]
정용숙(鄭容淑)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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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