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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공주(樂浪公主){2}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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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신란궁부인(神鸞宮夫人)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고려전기
본관개성(開城)
활동분야왕실 > 왕자
신명왕태후(神明王太后)
외조부유긍달(劉兢達)

[상세내용]

낙랑공주(樂浪公主)
생졸년 미상. 고려 태조의 맏딸. 본관은 개성(開城).

신라 경순왕의 처이다. 일명 신란궁부인(神鸞宮夫人)이라고도 하며, 혼인 전에는 안정숙의공주(安貞淑義公主)라 불렸다. 모친은 충주 지방의 호족 유긍달(劉兢達)의 딸인 신명왕태후(神明王太后) 유씨(劉氏)이다.

『삼국사기』『고려사』에 의하면 935년(태조 18) 11월에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 김부(金傅)가 백관을 이끌고 고려에 항복하자, 태조는 자신의 맏딸인 낙랑공주경순왕의 아내로 삼게 했다고 한다.

태조에게는 9인의 공주가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낙랑공주성무부인(聖茂夫人) 박씨(朴氏) 소생의 공주를 김부와 혼인시키고 나머지는 모두 종실과 혼인시켰다.

고려왕실에서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주가 타성(他姓)과 혼인한 예는 극히 드물었는데, 김부에게만은 낙랑공주 등 2인의 공주를 혼인시켰다.

이는 신라를 들어 귀부(歸附)한 김부에 대한 감사의 뜻과 태조 자신이 신라왕실에서 신성태후(神成太后)를 맞아들임으로써, 이중의 혼인관계를 통하여 고려왕실의 신분을 신라왕실과 대등하게 상승시켜 통일된 한반도를 용이하게 지배할 수 있는 권위를 보장받기 위한 의도가 들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高麗史
高麗初期의 王室婚姻에 對하여(河炫綱, 梨大史苑 7, 1968)
高麗前期婚姻政策의 추이와 族內婚의 성립(鄭容淑, 韓國學報 37, 1984)

[집필자]

권덕영(權悳永)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