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걸(朴成傑)
[상세내용]
박성걸(朴成傑)
생졸년 미상. 고려의 재상.
1011년(현종 2)에 거란의 침입으로 왕이 나주로 피난갈 때 호종하였다.
1039년(정종 5)에 도병마부사로서 건의하여 동북면 정변진(靜邊鎭: 지금의 영흥 부근)에 성을 쌓아 여진에 대한 방비를 굳게 하였다. 뒤에 호부상서가 되었고, 1047년(문종 1)에 서북면행영병마사(西北面行營兵馬使)가 되었다.
1050년에 동북면병마사로 있을 때 상신하여 진명(鎭溟: 지금의 덕원 부근)에 침입한 해적을 무찌른 병마녹사(兵馬錄事) 문양렬(文揚烈)의 전공을 포상하게 하였다.
1053년에 참지정사(參知政事)가 되었다. 겸사도(兼司徒)‧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를 거쳐 1055년에 내사시랑평장사 상주국(內史侍郞平章事上柱國)이 되었다.
1063년에 검교태위 문하시중(檢校太尉門下侍中)이 되어 치사하였다.
1011년(현종 2)에 거란의 침입으로 왕이 나주로 피난갈 때 호종하였다.
1039년(정종 5)에 도병마부사로서 건의하여 동북면 정변진(靜邊鎭: 지금의 영흥 부근)에 성을 쌓아 여진에 대한 방비를 굳게 하였다. 뒤에 호부상서가 되었고, 1047년(문종 1)에 서북면행영병마사(西北面行營兵馬使)가 되었다.
1050년에 동북면병마사로 있을 때 상신하여 진명(鎭溟: 지금의 덕원 부근)에 침입한 해적을 무찌른 병마녹사(兵馬錄事) 문양렬(文揚烈)의 전공을 포상하게 하였다.
1053년에 참지정사(參知政事)가 되었다. 겸사도(兼司徒)‧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를 거쳐 1055년에 내사시랑평장사 상주국(內史侍郞平章事上柱國)이 되었다.
1063년에 검교태위 문하시중(檢校太尉門下侍中)이 되어 치사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高麗史節要
[집필자]
민병하(閔丙河)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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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