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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감(金良鑑)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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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諡號)문안(文安)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고려전기
본관광양(光陽)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김양감(金良鑑)
생졸년 미상. 고려의 문신. 본관은 광양(光陽)(주1)
본관
『고려사』 97권 김약온 열전의 기사, "김약온의 자는 유승(柔勝)이요 처음 이름은 의문(義文)이며 광양현(光陽縣) 사람이요 시중 김양감(金良鑑)의 아들이다." 및 『고려묘지명집성』 김의원(金義元) 묘지명의 "공의 이름은 의원(義元)이고, 나주 광양현(羅州 光陽縣) 사람이다. ....아버지 양감(良鑑)은 수대보 문하시중 감수국사(守大保 門下侍中 監修國史)이고..." 참고. 그런데 『증보문헌비고』에는 광산인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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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0년(문종 24) 상서우승 좌간의대부(尙書右丞左諫議大夫)에 이어 서북로병마부사가 되고, 이듬해 상서좌승 지어사대사(尙書左丞知御史臺事)가 되었다.

1074년 태복경(太僕卿)으로 중서사인(中書舍人) 노단(盧旦)과 함께 송나라사은사로 가서 종전의 등주(登州)를 거치는 항로를 요나라의 이목을 피하기 위하여 명주(明州: 浙江省)로 변경하는 데 합의하고 귀국하였다.

이듬해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가 되고, 동지중추원사호부상서참지정사 판상서병부사(參知政事判尙書兵部事)권판중추원사(權判中樞院事)를 거쳐 1082년 좌복야(左僕射)에 올랐다.

선종이 즉위하자 중서시랑 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로서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이정공(李靖恭) 등과 함께 시정(時政)의 득실을 진술하고 이어 판상서호부사(判尙書戶部事)를 거쳐 수태위(守太尉)에 올랐다.

1090년(선종 7)에 문하시랑으로서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우간의 손관(孫冠)과 함께 진사 이경필(李景泌) 등을 뽑았는데, 그 답안이 격식에 맞지 않아 주사(主司)에 밝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자겸(李資謙)과 인척이면서도 정의를 지켜 끝까지 그에게 아부하지 않았다. 시호는 문안(文安)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宋史

[집필자]

박성봉(朴性鳳)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