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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肅宗){1}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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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왕희(王熙)
이명(異名)왕옹(王顒)
자(字)천상(天常)
시호(諡號)명효(明孝)
생년1054(문종 8)
졸년1105(숙종 10)
시대고려전기
본관개성(開城)
활동분야왕실 > 왕
명의태후(明懿太后)
처부유홍(柳洪)
묘소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판문리

[상세내용]

숙종(肅宗)
1054년(문종 8)∼1105년(숙종 10). 고려 제15대왕. 재위 1095∼1105년. 본관은 개성(開城). 초명은 왕희(王熙), 이름은 왕옹(王顒), 자는 천상(天常).

문종의 3남이며 선종의 동모제(同母弟)이다. 비는 유홍(柳洪)의 딸 명의태후(明懿太后)이다.

부지런하고 검소하며 과단성이 있고, 오경(五經)‧제자서(諸子書)‧사서(史書) 등에 해박하였다. 문종의 큰 기대를 받아 “뒷날에 왕실을 부흥시킬 자는 너다.”라고 하여 문종계림공에 봉하여졌는데, 친조카인 헌종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1년 만에 왕위를 찬탈하여 1095년에 즉위하였다.

1096년 6촌 이내의 혼인을 금하였고, 1097년에는 주전관(鑄錢官)을 두고 주화를 만들어 통용하게 하였으며, 1101년에는 본국의 지형을 본떠서 은병〔闊口〕을 주조하고 이듬해에는 고주법(鼓鑄法: 돈 만드는 법)을 제정하여 해동통보(海東通寶) 1만 5,000관을 만들어 문무양반과 군인들에게 분배하였다.

1099년 김위제(金謂磾)의 주장에 따라 남경을 중시하고 남경개창도감(南京開創都監)을 두어 궁궐을 조영하게 하였다.

1102년에 예부에서 “우리나라가 예의로 교화하기는 기자(箕子)로부터 비롯되었으니, 원컨대 그 분묘를 찾고, 사당을 세워 제사하십시오.”라고 아뢰니 이에 따라 서경기자사(箕子祠)를 세웠다.

1103년 동여진의 추장 영가(盈歌)가 사신을 보내어 내조하였으나, 추장이 되면서 고려에 침입하였다. 같은해 2월에 임간(林幹)정주에서 패하였고, 3월에는 윤관(尹瓘)이 여진정벌을 꾀하였으나, 역시 이기지 못하고 화약을 체결하고 돌아왔다. 이에 따라 윤관의 주장으로 별무반(別武班)을 처음 설치하였다.

윤관은 “신이 여진에게 패한 것은 저들은 기병이고, 우리는 보병이므로 대적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아뢰니 드디어 기병으로 구성된 신기군(神騎軍), 보병으로 구성된 신보군(神步軍), 승도(僧徒)들로 구성된 항마군(降魔軍)을 두어 별무반이라 칭하고, 여진정벌을 준비하게 하였다.

1105년 서경에 순행하여 동명왕묘(東明王廟)에 제사하고, 병이 들어 개경으로 돌아오다가 10월에 수레 안에서 죽으니 태자 우(俁: 예종)가 유조를 받들어 즉위하였다. 능은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판문리에 있는 영릉(英陵)이며, 시호는 명효(明孝)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東史綱目

[집필자]

신호웅(辛虎雄)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