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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宣宗){2}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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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왕운(王運)
이명(異名)왕증(王蒸)
이명(異名)왕기(王祈)
자(字)계천(繼天)
시호(諡號)사효(思孝)
생년1049(문종 3)
졸년1094(선종 11)
시대고려전기
본관개성(開城)
활동분야왕실 > 왕
사숙태후(思肅太后)
처부이석(李碩)
묘소인릉(仁陵)

[상세내용]

선종(宣宗)
1049년(문종 3)∼1094년(선종 11). 고려 제13대왕. 재위 1083∼1094년. 본관은 개성(開城). 이름은 운(運), 초명은 증(蒸) 또는 기(祈), 자는 계천(繼天). 비(妃)는 이석(李碩)의 딸 사숙태후(思肅太后)이다.

어려서부터 경사(經史)에 밝고 제술(製述)에 뛰어나 문종국원후(國原侯)에 봉해졌으며 상서령(尙書令)에 제수된 뒤, 순종수태사 중서령(守太師中書令)이 되었는데, 순종이 두달 만에 죽자 그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1084년(선종 1) 승과를 설치하고 불교를 장려하였으며, 변경을 지키는 사졸들에게 저고리와 바지를 하사하였다.

1085년 왕의 아우 의천(義天)이 몰래 송나라에 들어가 2년 동안 불법을 공부하고 돌아오니 그 환영의식이 성대하였다. 의천은 불경과 경서 1,000권을 바쳤고, 흥왕사(興王寺)에 교장도감(敎藏都監)을 세울 것을 건의하였으며, 일본 등지에서 서적을 사들이니 거의 4,000여권에 달하였는데 모두 간행하게 하였다.

1089년 회경전(會慶殿)에 13층 금탑(金塔)을 세우고, 인예왕후(仁睿王后)의 청에 따라 천태종(天台宗)의 중심사찰인 국청사(國淸寺)를 짓게 하였다.

1091년 예부의 주장으로 국학(國學)에 72현(공자의 제자인 顔回 등 72인)의 상을 벽에 그려 붙였는데, 그 차례는 송나라 국자감의 예를 따르고, 그 복장은 10철(十哲)을 모방하게 하였다.

1092년 병이 들어 의원이 처방한 약을 먹고 문득 시를 지었는데 “약효가 있고 없음이야 무엇을 염려하랴. 덧없는 인생 시작이 있었으니 어찌 끝이 없으리. 오직 원하는 것은 여러가지 선행을 닦아 청청한 곳에 올라 부처에게 예를 드림이네.”라는 구절이 있어 사람들이 놀라고 안쓰럽게 여겼다.

1094년 2월 열병(閱兵)하고, 5월에 연영전(延英殿)에서 죽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슬기로웠으며, 자라서는 효도하고 공손하고 검소하였으나 놀이에 절도가 없고, 사탑(寺塔)을 많이 세워 백성들이 과중한 노역에 대하여 원망이 많았다고 한다. 능은 개성에 있는 인릉(仁陵)이며, 시호는 사효(思孝)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東史綱目

[집필자]

신호웅(辛虎雄)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