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도유(朴都儒)
[상세내용]
박도유(朴都儒)
미상∼671년(문무왕 11). 신라 문무왕 때의 장군.
668년(문무왕 8) 한성주도독(漢城州都督)으로 백제잔민토벌과 고구려정벌에 참여하였으나, 그뒤 모반을 일으켜 죽음을 당하였다.
668년 6월 고구려원정군의 선봉장으로 선발되어 대당총관(大幢摠管) 김인문(金仁問)‧김천존(金天存) 휘하에서, 군관(軍官)‧용장(龍長) 등과 같이 한성주행군총관(漢城州行軍摠管)이 되어 출정하여 9월에 평양성을 함락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뒤 백제잔민이 웅진(熊津: 지금의 공주)에서 부흥운동을 일으킬 때, 백제의 부녀자를 그에게 출가시켜 그와 공모한 일이 있었다.
즉, 백제잔적들이 여인계를 써서 신라의 병기(兵器)를 도취하고 관아를 습격하려는 음모를 꾀한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사전에 발각되어 그는 참형되었고 백제잔민의 반란은 진압되었다.
668년(문무왕 8) 한성주도독(漢城州都督)으로 백제잔민토벌과 고구려정벌에 참여하였으나, 그뒤 모반을 일으켜 죽음을 당하였다.
668년 6월 고구려원정군의 선봉장으로 선발되어 대당총관(大幢摠管) 김인문(金仁問)‧김천존(金天存) 휘하에서, 군관(軍官)‧용장(龍長) 등과 같이 한성주행군총관(漢城州行軍摠管)이 되어 출정하여 9월에 평양성을 함락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뒤 백제잔민이 웅진(熊津: 지금의 공주)에서 부흥운동을 일으킬 때, 백제의 부녀자를 그에게 출가시켜 그와 공모한 일이 있었다.
즉, 백제잔적들이 여인계를 써서 신라의 병기(兵器)를 도취하고 관아를 습격하려는 음모를 꾀한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사전에 발각되어 그는 참형되었고 백제잔민의 반란은 진압되었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집필자]
신형식(申瀅植)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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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