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大文)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B300BB38FFFFD0684X0 |
이명(異名) | 실복(悉伏) |
생년 | ?(미상) |
졸년 | 684(신문왕 4) |
시대 | 통일신라 |
활동분야 | 귀화‧유민 > 유민 |
부 | 안승(安勝) |
[상세내용]
대문(大文)
미상∼684년(신문왕 4). 보덕국왕 안승(安勝)의 아들이다. 실복(悉伏)이라고도 한다.
신라 조정에서는 안승을 보덕국왕으로 책봉하고 나서 얼마 뒤인 683년(신문왕 3) 안승을 금마저(金馬渚: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군)에서 경주로 불러들여 소판의 관등과 김씨 성을 내리고, 저택과 토지까지 주어 돌려보내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안 대문은 684년 11월 금마저에 웅거하여 난을 일으켰다.
그러나 곧 신라 토벌군에 의하여 체포되어 죽음을 당하였고, 남은 무리들이 신라관리들을 죽이고 보덕성에 웅거하여 항거를 계속하였으나 신라군에 의하여 평정되었다.
신라는 대문의 난을 평정한 뒤 금마저의 고구려 유민들을 남쪽 주군(州郡)으로 옮기고, 금마저를 강등하여 금마군(金馬軍)으로 하였다.
신라 조정에서는 안승을 보덕국왕으로 책봉하고 나서 얼마 뒤인 683년(신문왕 3) 안승을 금마저(金馬渚: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군)에서 경주로 불러들여 소판의 관등과 김씨 성을 내리고, 저택과 토지까지 주어 돌려보내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안 대문은 684년 11월 금마저에 웅거하여 난을 일으켰다.
그러나 곧 신라 토벌군에 의하여 체포되어 죽음을 당하였고, 남은 무리들이 신라관리들을 죽이고 보덕성에 웅거하여 항거를 계속하였으나 신라군에 의하여 평정되었다.
신라는 대문의 난을 평정한 뒤 금마저의 고구려 유민들을 남쪽 주군(州郡)으로 옮기고, 금마저를 강등하여 금마군(金馬軍)으로 하였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집필자]
김복순(金福順)
대표명 | 대문(大文) |
성명 | 대문(大文) |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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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