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열주도(列周道)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5F4C8FCB3C4U9999X0
이명(異名)열주의(列周義)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발해
활동분야귀화‧유민 > 유민

[상세내용]

열주도(列周道)
생졸년 미상. 발해의 유민.

열주의(列周義)라고도 한다. 발해의 유민들이 세운 후발해에서 남해부도독(南海府都督)으로 활약하였다. 발해왕실이 붕괴된 직후에는 후당(後唐) 등에 발해사신이 계속해서 왕래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압록부 일대를 거점으로 활약하였던 대씨정권(大氏政權)인 이른바 후발해의 사신들이었다.

는 935년 12월에 조공사신으로 후당에 다녀왔고, 그 다음해 2월에도 후당에 갔다가 검교공부상서(檢校工部尙書)의 벼슬까지 받고 돌아왔다.

이때 같이 간 발해정당성 공부경(政堂省工部卿) 오제현(吳濟顯)시광록경(試光錄卿)의 벼슬을 받았다. 이들은 중국 오대왕조에 왕래하였던 후발해의 마지막 사신들이었다.

938년에는 박승(朴昇) 등 3천여호가 고려로 투화하였던 사실로 보아 오대의 후진(後晉, 936∼946)초에는 열주도일파가 대씨에 이어 정권을 잡은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이는 970년 정안국왕(定安國王) 열만화(列萬華)가 그의 이름으로 송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였던 사실도 참고가 된다. 남해부도독이라는 직함을 통하여 알 수 있는 사실은 남해부가 오늘의 함경북도 지방인 옛 발해의 남경남해부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후발해의 위력이 옛 남경남해부까지 미쳤던 것을 시사하는 점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옛 동경용원부중경현덕부두만강 하류일대도 후발해의 위력 밑에 있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참고문헌]

五代會要
冊府元龜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高麗와 渤海(李龍範, 한국사 3, 국사편찬위원회, 1974)

[집필자]

한규철(韓圭哲)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