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리행(大道利行)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4B300B3C4B9ACD0728X0 |
생년 | ?(미상) |
졸년 | 728(신라: 성덕왕 27/발해: 무왕 인안 10) |
시대 | 발해 |
활동분야 | 왕실 > 왕자 |
부 | 대무예(大武藝) |
[상세내용]
대도리행(大道利行)
미상∼728년. 발해 무왕 대무예(大武藝)의 세자.
720년(인안 2) 당나라로부터 계루군왕(桂婁郡王)으로 책봉받는 등 당나라와 특별한 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당나라의 책봉은 발해의 시조 대조영(大祚榮)이 ‘발해군왕(渤海郡王)’으로, 그리고 그의 맏아들 대무예가 ‘계루군왕’으로 대우받았던 713년(천통 15)의 사건에 이어, 대조영이 죽은 뒤 대무예가 ‘발해군왕’을 이어받은 데 대한 후속조치인듯하다.
726년에는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좌무위대장군원외치숙위(左武衛大將軍員外置宿衛)’의 자격을 받았고, 다음해 당나라에 파견되어 담비와 쥐가죽을 전달하였다.
728년 당나라에서 숙위로 머무르던 중 병으로 죽었다.
죽은 뒤에도 그는 홍로경(鴻臚卿)으로 특별히 예우받고 비단 300필과 곡식 300석을 받았는가 하면, 유사조제관(有司弔祭官)이 만들어준 혼백의 상여〔靈轝〕를 타고 본국에 돌아왔다.
720년(인안 2) 당나라로부터 계루군왕(桂婁郡王)으로 책봉받는 등 당나라와 특별한 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당나라의 책봉은 발해의 시조 대조영(大祚榮)이 ‘발해군왕(渤海郡王)’으로, 그리고 그의 맏아들 대무예가 ‘계루군왕’으로 대우받았던 713년(천통 15)의 사건에 이어, 대조영이 죽은 뒤 대무예가 ‘발해군왕’을 이어받은 데 대한 후속조치인듯하다.
726년에는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좌무위대장군원외치숙위(左武衛大將軍員外置宿衛)’의 자격을 받았고, 다음해 당나라에 파견되어 담비와 쥐가죽을 전달하였다.
728년 당나라에서 숙위로 머무르던 중 병으로 죽었다.
죽은 뒤에도 그는 홍로경(鴻臚卿)으로 특별히 예우받고 비단 300필과 곡식 300석을 받았는가 하면, 유사조제관(有司弔祭官)이 만들어준 혼백의 상여〔靈轝〕를 타고 본국에 돌아왔다.
[참고문헌]
冊府元龜
渤海國志長編(金毓黻, 1934)
渤海의 成立과 그 文化(李龍範, 한국사 3, 국사편찬위원회, 1978)
渤海國志長編(金毓黻, 1934)
渤海의 成立과 그 文化(李龍範, 한국사 3, 국사편찬위원회, 1978)
[집필자]
한규철(韓圭哲)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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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