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대부인(國大夫人){1}
[상세내용]
국대부인(國大夫人)
생졸년 미상. 신라 박제상(朴堤上)의 부인.
나물마립간의 셋째아들 미해(美海)가 10살에 왜국에 볼모로 가서 30여년이나 돌아오지 못하자, 눌지마립간 때 삽라군태수(歃羅郡太守) 박제상이 왜국에 파견되어 기계(奇計)를 써서 밤에 몰래 미해를 탈출시키고 자신은 충절을 굽히지 않고 순절하였다. 미해가 귀국하자 왕은 감격하여 박제상의 부인을 계림국대부인(鷄林國大夫人)으로 책봉하였다.
박제상이 왜국으로 떠나갈 때 부인이 듣고 뒤쫓아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망덕사(望德寺) 남쪽 모래 사장에 이르러 몸부림치며 통곡하였으므로 그 곳을 ‘장사(長沙)’라 하였다.
부인의 친척 두 사람이 부축하여 집으로 돌아갈 때 부인이 다리를 뻗고 일어나지 않고 울부짖던 곳을 ‘벌지지(伐知旨)’라 하였다.
뒤에 애절한 사모의 정을 못이겨 치술령(鵄述嶺)에 올라가서 바다 멀리 왜국 쪽을 바라보다 죽어 망부석(望夫石)이 되었다 한다. 이 산에 사당을 세웠다.
나물마립간의 셋째아들 미해(美海)가 10살에 왜국에 볼모로 가서 30여년이나 돌아오지 못하자, 눌지마립간 때 삽라군태수(歃羅郡太守) 박제상이 왜국에 파견되어 기계(奇計)를 써서 밤에 몰래 미해를 탈출시키고 자신은 충절을 굽히지 않고 순절하였다. 미해가 귀국하자 왕은 감격하여 박제상의 부인을 계림국대부인(鷄林國大夫人)으로 책봉하였다.
박제상이 왜국으로 떠나갈 때 부인이 듣고 뒤쫓아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망덕사(望德寺) 남쪽 모래 사장에 이르러 몸부림치며 통곡하였으므로 그 곳을 ‘장사(長沙)’라 하였다.
부인의 친척 두 사람이 부축하여 집으로 돌아갈 때 부인이 다리를 뻗고 일어나지 않고 울부짖던 곳을 ‘벌지지(伐知旨)’라 하였다.
뒤에 애절한 사모의 정을 못이겨 치술령(鵄述嶺)에 올라가서 바다 멀리 왜국 쪽을 바라보다 죽어 망부석(望夫石)이 되었다 한다. 이 산에 사당을 세웠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三國遺事
新增東國輿地勝覽
東京雜記
三國遺事
新增東國輿地勝覽
東京雜記
[집필자]
문경현(文暻鉉)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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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