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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준(朴文俊)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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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신라
활동분야문학 > 문인

[상세내용]

박문준(朴文俊)
생졸년 미상. 신라 문무왕 때의 문장가.

문장이 뛰어나 당시 대당외교에 크게 공을 세웠다. 신라과 연합하여 백제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삼국통일을 눈앞에 두었으나 당나라백제고구려의 고토뿐만 아니라 신라까지도 지배하려 하였다.

당시 당나라에 유학하고 있던 승 의상(義湘)당나라의 이러한 의도를 알아차리고 급히 귀국하여 당나라의 내침을 보고하였다. 문무왕은 군신을 불러 모아 그 대책마련에 부심하였다.

이때 각간(角干) 김천존(金天尊)이 법사 명랑(明朗)이 비법을 알고 있다 하여 추천하였다. 명랑낭산(狼山)의 남쪽에 신유림(神遊林)이 있으므로 그곳에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짓는다면 당병을 격퇴할 수 있을 것이라 하므로 이에 절을 창건하였다.

당나라의 내침이 있자 명랑이 유가승(瑜伽僧) 12명을 거느리고 문두루비법(文豆婁祕法)을 짓자 파도가 일어나 당나라의 병선은 침몰하였다.

671년(문무왕 11) 다시 당나라가 침략하였으나 역시 실패로 끝났다. 박문준은 당시 한림랑(翰林郞)으로서 김인문(金仁問)을 따라 외교사절로 당나라에 들어가 있다가 김인문과 함께 투옥되었다. 당나라 고종(高宗)박문준을 불러 신라에는 외적을 물리칠 수 있는 무슨 비법이 있는지를 물었다.

이때 그는 당나라에 온 지 10여년이 되어 본국의 일을 알지 못하다가 당나라의 은혜를 입어 삼국을 통합하였으므로 그에 보답하기 위하여 천왕사(天王寺)를 창건하여 황제의 만수(萬壽)를 빌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여 듣고 있을 뿐이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당나라 고종은 기뼈하면서 예부시랑(禮部侍郞) 악붕구(樂鵬龜)신라에 파견하여 그 절을 조사하게 하였다. 문무왕은 이 소식을 듣고 사천왕사의 남쪽에 새로이 절을 짓고 사신에게 뇌물을 주어 속였다. 사신이 돌아가 박문준의 말이 사실인 것처럼 보고하였다.

문무왕은 이때를 이용하여 문장가 강수(强首)로 하여금 김인문의 일행을 석방하게 하는 표문(表文)을 지어 올리게 하니 당나라 고종은 그에 따랐다 한다.

[참고문헌]

三國遺事

[집필자]

주보돈(朱甫暾)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