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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도(李師道)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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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819(신라: 헌덕왕 11/발해: 선왕 건흥 2)
시대고구려
활동분야관료
이납(李納)
조부이정기(李正己)

[상세내용]

이사도(李師道)
미상∼819년. 고구려 유민출신의 당나라 절도사(節度使). 고려 이씨, 즉 고구려 유민으로서 평로절도사 검교상서 좌복야(平盧節度使檢校尙書左僕射)를 역임하는 등 당나라 헌종 때에 크게 활약하였다.

할아버지는 평로절도사 수사공 요양군왕(守司空饒陽君王) 이정기(李正己), 부친은 평로절도사 검교사공(檢校司空) 이납(李納)이며, 평로절도사 검교사도 겸 시중(檢校司徒兼侍中)을 역임한 이사고(李師古)의 이복동생이다.

이사고가 죽은 뒤 그 후계자로서 이사도를 천거하여 조정에 청하였으나 제서(制書)가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았는데, 이는 당시 재상 황상(黃常)이 그 권세를 꺾으려 한 것이었다.

이때 헌종은 바야흐로 유벽(劉闢)을 주살하여 동쪽을 토벌할 겨를이 없어 이사도에게 이 지역에 대한 책임을 맡게 하고 그해에 검교공부상서(檢校工部尙書)를 가하고 부대사(副大使)로 삼았다.

헌종채(蔡)땅을 토벌할 때 이사도는 무리 2천명을 뽑아 수춘(壽春)땅에 이르게 하였는데, 겉으로는 왕의 군대를 도우려 한다고 하였으나 실제는 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헌종에 의하여 채가 평정되어 비부원외랑(比部員外郞) 장숙(張宿)을 보내어 땅을 나누고 질자(質子)를 보내게 하니, 이사도는 3주를 바치고 아들 홍방(弘方)을 보내어 입시하게 하였다.

그런데 휘하 여러 장수들의 만류에 따라 이사도는 군이 불협하여서 따르지 못한다고 보고하니, 헌종이 노하여 그 관직을 삭탈하고 여러 군대에게 나아가 치도록 조서를 내렸다.

그리하여 헌종은 819년(헌덕왕 11) 7월에 운주(鄆州: 지금의 山東省濟寧道)절도사 이사도의 반란을 평정하기 위하여 사신을 보내어 신라에게 원군을 요청하였으며, 신라순천군장군(順天軍將軍) 김웅원(金雄元)이 갑병(甲兵) 3만명을 거느리고 가서 돕게 하였다.

한편, 이사도는 자신의 군대가 대패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두려워하여 대장 유오(劉悟)를 보내어 치게 하였으나 오히려 유오의 군대가 반란하였음을 듣고, 아들 홍방과 함께 숨어 있다가 적군에게 사로잡혀 일생을 마쳤다.

[참고문헌]

新唐書
唐代藩鎭의 한 硏究―高句麗遺民 李正己一家를 中心으로―(金文經, 省谷論叢 6, 1975;唐 高句麗遺民과 新羅僑民, 日新社, 1986)

[집필자]

김영심(金英心)
대표명이사도(李師道)
사도(師道)
성명이사도(李師道)

명 : "사도(師道)"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三代寶鑑v2至而憂無救於事○魏徵玄孫稠貧甚以故第質錢於人平盧節度使李師道請以私財贖出之白居易奏言事關激勸宜出朝廷師道何人敢掠斯美望敕有司以官錢贖還之上乃出內庫二千緡贖以賜稠仍禁質賣○吐突承璀宦官領功德使盛修安國寺奏立
歷代君鑑v3廷○淮西平平盧節度使李師道憂懼遣使奉表請使長子入侍幷獻沂密海三州上許之遣左常侍李遜詣鄆州宣慰遜至鄆察師道非實誠歸言於上曰師道頑愚反覆恐必須用兵旣而師道表言軍情不聽納質割地上怒決意討之乃下制罪狀令宣武魏博義
歷代君鑑v3李師道憂懼遣使奉表請使長子入侍幷獻沂密海三州上許之遣左常侍李遜詣鄆州宣慰遜至鄆察師道非實誠歸言於上曰師道頑愚反覆恐必須用兵旣而師道表言軍情不聽納質割地上怒決意討之乃下制罪狀令宣武魏博義成武寧橫海兵共討之魏
歷代君鑑v3入侍幷獻沂密海三州上許之遣左常侍李遜詣鄆州宣慰遜至鄆察師道非實誠歸言於上曰師道頑愚反覆恐必須用兵旣而師道表言軍情不聽納質割地上怒決意討之乃下制罪狀令宣武魏博義成武寧橫海兵共討之魏博義成軍送所獲鄆州牙將夏侯
歷代君鑑v3之魏博義成軍送所獲鄆州牙將夏侯澄等四十七人上皆釋弗誅各付所獲行營驅使曰若有父母欲歸者優給遣之朕所誅者師道而已於是賊中聞之降者相繼平盧都將劉悟乃夜襲師道捕斬之函首以聞淄靑等十二州皆平上命戶部侍郞楊於陵爲淄靑
歷代君鑑v3委武元衡或說平盧節度使李師道曰天子所以銳意誅蔡者元衡贊之也請密往剌之元衡死則他相不敢主其事爭勸罷兵矣師道乃謀緩蔡兵伏盜京師刺害元衡又擊裵度傷首不死賊因亡去議者欲罷度安二鎭反側上怒曰度若罷是賊計得行朝廷無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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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