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왕(閔中王)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BFCC911C655D0048X0 |
이명(異名) | 해색주(解色朱) |
생년 | ?(미상) |
졸년 | 48(고구려: 민중왕 5, 모본왕 1/백제: 다루왕 21/신라: 유리이사금 25) |
시대 | 고구려 |
활동분야 | 왕실 > 왕 |
[상세내용]
민중왕(閔中王)
미상∼48년. 고구려 제4대왕. 재위 44∼48년. 이름은 해색주(解色朱)인데 『삼국유사』에는 ‘해’를 성씨로 보고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제3대왕인 대무신왕이 죽자, 태자 해우(解優: 뒤의 모본왕)가 어리므로 왕의 아우인 민중왕이 왕위에 올랐다.
그런데 『삼국유사』에는 민중왕은 대무신왕의 아들이며 모본왕의 동생이라고 되어 있다.
5년 동안 재위하였는데 재위 4년 만인 47년 7월 민중원(閔中原)에서 사냥하다가 한 석굴을 찾아내고 좌우의 신하에게 자신의 장지(葬地)로 삼아줄 것을 유언하였다. 그해 10월 잠지락부(蠶支落部)의 대가(大家, 大加)인 대승(戴升) 등 1만여가(家)가 낙랑으로 가서 한나라에 귀부(歸附)하였다.
48년에 죽었는데 생전에 그가 선정해놓았던 민중원의 석굴에 장사지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제3대왕인 대무신왕이 죽자, 태자 해우(解優: 뒤의 모본왕)가 어리므로 왕의 아우인 민중왕이 왕위에 올랐다.
그런데 『삼국유사』에는 민중왕은 대무신왕의 아들이며 모본왕의 동생이라고 되어 있다.
5년 동안 재위하였는데 재위 4년 만인 47년 7월 민중원(閔中原)에서 사냥하다가 한 석굴을 찾아내고 좌우의 신하에게 자신의 장지(葬地)로 삼아줄 것을 유언하였다. 그해 10월 잠지락부(蠶支落部)의 대가(大家, 大加)인 대승(戴升) 등 1만여가(家)가 낙랑으로 가서 한나라에 귀부(歸附)하였다.
48년에 죽었는데 생전에 그가 선정해놓았던 민중원의 석굴에 장사지냈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三國遺事
三國遺事
[집필자]
김용선(金龍善)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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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