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高仇)
[상세내용]
고구(高仇)
미상∼438년(장수왕 26). 고구려 장수왕 때의 장군.
성씨로 볼 때 고구려 왕족의 일원으로 보이나, 가계나 행적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고구려는 북연(北燕)과 우호관계를 유지하였는데, 436년(장수왕 24) 북위(北魏)의 침략을 받아 구원을 요청한 북연왕 풍홍(馮弘)에게 군사를 보내어 구원하였다.
그뒤 풍홍은 북풍성(北豊城)에 거주하게 되었는데, 장수왕이 그의 측근을 빼앗고 태자 왕인(王仁)을 인질로 취하는 것을 분하게 여겨, 442년 남조의 송나라로 빠져나가려 하였다.
이때 고구는 왕의 명에 따라 손수(孫漱)와 함께 풍홍의 이주를 막다가, 송나라 군사들의 기습을 받아 죽었다.
그뒤 고구려가 이 살상행위가 불법임을 항의하자, 송나라는 고구려와의 관계를 의식하여 사건의 책임자인 백구(白駒) 등을 투옥하였다.
고구는 고구려와 북위와 송나라가 동아시아의 주도권을 놓고 민감하게 견제, 대치하던 시기에 왕의 측근으로 활동하였다.
성씨로 볼 때 고구려 왕족의 일원으로 보이나, 가계나 행적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고구려는 북연(北燕)과 우호관계를 유지하였는데, 436년(장수왕 24) 북위(北魏)의 침략을 받아 구원을 요청한 북연왕 풍홍(馮弘)에게 군사를 보내어 구원하였다.
그뒤 풍홍은 북풍성(北豊城)에 거주하게 되었는데, 장수왕이 그의 측근을 빼앗고 태자 왕인(王仁)을 인질로 취하는 것을 분하게 여겨, 442년 남조의 송나라로 빠져나가려 하였다.
이때 고구는 왕의 명에 따라 손수(孫漱)와 함께 풍홍의 이주를 막다가, 송나라 군사들의 기습을 받아 죽었다.
그뒤 고구려가 이 살상행위가 불법임을 항의하자, 송나라는 고구려와의 관계를 의식하여 사건의 책임자인 백구(白駒) 등을 투옥하였다.
고구는 고구려와 북위와 송나라가 동아시아의 주도권을 놓고 민감하게 견제, 대치하던 시기에 왕의 측근으로 활동하였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晉書
宋書
三國의 對中關係(申瑩植, 韓國古代史의 新硏究, 1984)
5∼6世紀東아시아의 國際情勢와 高句麗의 對外關係(盧泰敦, 東方學志 44, 螢雪出版社, 1984)
晉書
宋書
三國의 對中關係(申瑩植, 韓國古代史의 新硏究, 1984)
5∼6世紀東아시아의 國際情勢와 高句麗의 對外關係(盧泰敦, 東方學志 44, 螢雪出版社, 1984)
[집필자]
김기흥(金基興)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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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