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우륵(于勒)

[요약정보]

UCIG002+AKS-KHF_12C6B0B975FFFFU9999X0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가야
활동분야음악 > 가야금 명인

[상세내용]

우륵(于勒)
생졸년 미상. 가야국 가실왕(嘉悉王)신라 진흥왕 때 악사로 활약한 가야금의 명인.

가야국 성열현(省熱縣)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우륵이 태어난 가야국이 어느 가야인지, 또한 가실왕가야국 중 어느 나라 몇 대 임금인지 확실하지 않다.

한때 가실왕우륵에게 이르기를, “모든 나라의 방언도 각각 서로 다른데, 성음(聲音)이 어찌 하나일 수 있겠는가?”라고 하며 가야금을 위하여 악곡을 지으라 하여 12곡을 지었다고 한다.

그뒤 가야국이 어지러워지자 가야금을 들고 제자 이문(泥文)과 함께 신라 진흥왕에게 투항하였는데, 왕은 그를 맞아 국원(國原: 지금의 충주)에 안치시키고 계고(階古)만덕(萬德)법지(法知) 등을 보내어 그의 업(業)을 전습하게 하였다.

우륵은 이 세 사람의 재주를 헤아려 계고에게는 가야금, 법지에게는 노래, 만덕에게는 춤을 각각 가르쳤다.

그뒤 이들은 우륵이 만든 12곡을 듣고는 “이 곡들은 번차음(繁且淫)하여 아정(雅正)하지 못하다.” 하며 5곡으로 줄여버렸다. 우륵이 이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매우 노하였으나 새로 줄인 5곡을 모두 듣고 난 뒤에는 눈물을 흘리며, “즐거우면서 음란하지 않고, 슬프면서도 비통하지 않으니 가히 아정하다 하겠다.”라고 감탄하였다 한다.

일찍이 우륵이 지은 12곡명은 「하가라도(下加羅都)」‧「상가라도(上加羅都)」‧「보기(寶伎)」‧「달기(達己)」‧「사물(思勿)」‧「물혜(勿慧)」‧「하기물(下奇物)」‧「사자기(師子伎)」‧「거열(居烈)」‧「사팔혜(沙八兮)」‧「이사(爾赦)」‧「상기물(上奇物)」이다. 이 중에서 「보기」‧「사자기」‧「이사」를 제외한 나머지 9곡은 당시의 군현명과 같아서 해당지방 민요의 성격을 띤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韓國樂器大觀(張師勛, 韓國國樂學會, 1969)

[집필자]

권오성(權五聖)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