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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조(李多祚)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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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707(신라 성덕왕 6)
시대삼국시대
본관장흥(長興)
활동분야무신 > 무신

[상세내용]

이다조(李多祚)
미상∼707년(신라 성덕왕 6). 본관은 장흥(長興).

장흥이씨(長興李氏)의 시조이다.

성품이 용맹하고 활을 잘 쏘았는데, 우응양대장군일 때 흑수 말갈과 전투를 벌였고, 추장들을 유인해 일거에 소탕하는 전공을 세웠다.

694년에 투르크카프간카한이 영주를 공격해 올 때 반격에 나섰으나 패하였다.

696년 거란이진충이 거병하자 우무위대장군으로 참전하여 전공을 세워 우우림 대장군이 되어 북문 수비의 임무를 맡았다.

698년 투르크와의 혼인동맹이 깨져 카프간카한이 침공해오자, 사타충의 등과 함께 20만 병력을 이끌고 반격에 나서 격퇴하였다.

705년에 측천무후의 측근 장이지, 장창종 형제의 횡포가 심해지자, 이들을 제거하려는 장간지의 요청을 수락하여 즉시 우림군을 이끌고 장이지, 장창종을 처단하고 측천무후를 강제 퇴위시킨 후 중종을 옹립하고, 그 공으로 요양군왕의 직위를 받았다.

이후 중종이 태묘에 갈 때마다 호위하였는데, 감찰어사 왕적중종에게 이민족 출신이 황제를 호위하는 것이 부당하다 청했으나, 중종이 이를 물리칠 정도로 신임이 각별하였다.

707년에 위황후와 대립하던 태자 이중준과 거병하여 위황후 일파 척살에 나서 무삼사를 처단하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곧 위황후 일파의 반격을 받아 현무문에서 참살당하고, 그 두 아들도 죽고 가산이 적몰되었다.

이후 위황후 일파를 제거하고 즉위한 예종에 의해 신원이 회복되었다.

[참고문헌]

長興李氏世譜

[집필자]

이채경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