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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허(備虛)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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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삼국시대
활동분야종교 > 불교인

[상세내용]

비허(備虛)
생졸년 미상.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로, 석굴사(石崛寺)를 창건했다고 전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 「보양리목조(寶壤利木條)」를 보면, “보양선사(寶壤禪師)는 석굴사의 비허사(備虛師)와 더불어 형제가 되어 봉성‧석굴‧운문 등 세 절의 연접된 산봉우리를 서로 왕래하였다.[古傳不載 諺云 與石崛備虛師(一作毗虛) 位昆弟 奉聖石崛雲門三寺 連峰櫛比 交相往還.]”는 내용이 있다.

이 기록을 토대로 고찰해보면, 그는 보양선사(寶壤禪師)와 법형제가 되며 같은 시기의 인물이다. 그는 왕건이 당시 후백제견훤을 치기 위하여 동정(東征)한 927년(신라 경순왕 1) 이전에 석굴사를 창건한 것으로 추정된다.

석굴사는 석골사(石骨寺) 또는 노전사(老澱寺)라고도 불리는데, 경상남도 밀양시 운문산(雲門山)에 있는 통도사의 말사이다. 560년(신라 진흥왕 12)에 비허(備虛)가 창건했다고도 하고, 773년(혜공왕 9)에 법조(法照)가 창건했다고도 한다. 비허가 작은 암자를 짓고 보양(寶壤)과 서로 왕래하며 수도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하므로, 비허가 절을 창건하고, 법조는 중창한 인물로 추정된다. 태조 왕건(王建)고려를 건국할 때 경제적인 도움을 주어 건국 이후에는 크게 번창하였으며,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들이 활약하던 곳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三國遺事

[집필자]

이채경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