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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조왕(溫祚王)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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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28(온조왕 46)
시대백제
활동분야시조

[상세내용]

온조왕(溫祚王)
미상∼28년(온조왕 46). 백제의 건국시조. 엄밀한 의미에서는 위례성(慰禮城)에 토대를 둔 백제 왕실의 시조. 재위 서기전 18년∼서기 28년.

현존 문헌들에는 백제의 시조로 전하는 인물들이 여러 명이며, 온조는 그 중의 하나이다.

백제 초기에는 북쪽에서 한반도 중서부일대에 남하한 부여족의 여러 집단들이 연맹체를 결성하고 있었다. 그들 중 연맹체를 주도한 대세력으로는 먼저 미추홀(彌鄒忽: 현재의 인천 부근으로 추정)에 웅거한 집단이 대두하였고, 그에 뒤이어 패권을 잡은 것이 위례성(현재의 서울 부근 또는 廣州 부근으로 추정)의 집단이었다.

그리고 미추홀에서 일어난 집단의 시조로 전하는 것이 비류(沸流)이고, 그뒤에 권력을 장악한 위례성 집단의 시조가 바로 온조이다.

『삼국사기』 등에는 온조의 아버지를 동명(東明)이라 하는 한편, 동명백제의 시조라고도 하였다.

현존 문헌들에 의하면, 북부여(北扶餘)고구려(卒本扶餘라고도 함.)백제(南扶餘라고도 함.) 등 부여족 사회들은 모두 동명을 시조라 하고, 그를 숭배하는 제전(祭典)을 각기 가지고 있었다.

온조의 아버지가 동명이라 하는 것도 그러한 부여족 일반의 상황과 관계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온조비류가 형제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두 집단의 연맹관계를 형제의 관계로 강조하기 위하여 만든 연맹설화의 구성에서 오는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 등에 온조왕 치세(治世)의 일이라고 한 것들의 상당부분은 실제로는 백제의 발전과정에서 점차적으로 이루어진 일들을 소급해놓은 것이다. 이를테면, 온조왕대에 마한지역 전체를 통합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러한 영토의 개척은 실제로는 훨씬 후대에 이루어진 일이다.

또한, 백제연맹체의 주도권이 미추홀 왕족으로부터 위례성 왕족에게 넘어간 것이 온조왕대였다는 것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연맹장의 역할을 넘어서는 강력한 왕권이 확립되는 것도 온조왕대에서 훨씬 후대인 고이왕대에나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韓國史―古代篇―(李丙燾, 震檀學會, 1959)
百濟의 東明神話와 東明廟(盧明鎬, 歷史學硏究 Ⅹ, 1981)

[집필자]

노명호(盧明鎬)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