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약엽례(掠葉禮)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57DC5FDB840U9999X0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백제
활동분야외교 > 외교가

[상세내용]

약엽례(掠葉禮)
생졸년 미상. 백제 성왕 때의 외교가. 왕경의 중부 출신.

『석일본기(釋日本紀)』의 훈(訓)에 의하면 ‘약(掠)’의 당시 발음은 ‘경’이다.

546년(성왕 24) 6월 나솔(奈率) 관등으로서 왜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는데, 그 목적은 한수유역 회복에 필요한 군사원조 요청과 관련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원병요청을 위하여 왜에 파견되었다가 548년 정월에 귀국한 덕솔(德率) 진모선문(眞慕宣文)을 이어, 그해 4월에 한솔(扞率) 관등의 신분으로서 다시금 왜에 파견되었다.

이때 그는 그해 정월 백제신라의 원군을 얻어 고구려의 진공을 격퇴한 마진성(馬津城: 지금의 충청남도 예산?)전투에서 사로잡은 고구려군 포로를 통하여, 안라가야(安羅伽倻)와 그 연락기구인 이른바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가 고구려를 선동하여 백제를 공격한 형적을 발견하였다고 왜왕에게 알렸다.

여기서 이른바 임나일본부라고 하는 것은 윤색에 불과할 뿐이다. 다만 그의 말은 백제로 파견된 왜의 원군이 가야지역내의 왜인세력과 가야의 반백제파에게 이용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된다.

그해 7월 백제로 귀국하였다.

[참고문헌]

日本書紀
釋日本紀

[집필자]

이도학(李道學)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