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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루(牟頭婁)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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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부여
활동분야관료 > 지방관

[상세내용]

모두루(牟頭婁)
생졸년 미상. 고구려 광개토왕북부여의 수사(守事). 관등은 대사자(大使者)였다.

모두루의 존재는 1935년 10월에 중국길림성(吉林省) 지안현(集安縣)의 동북, 즉 북한의 자강도 만포의 맞은편 언덕인 하양어두(下羊魚頭)에서 발견된 모두루묘지명에 의하여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이 묘지명에 의하면 모두루의 선조는 북부여출신으로 동명성왕과 함께 북부여로부터 내려왔으며, 4세기초에는 대형(大兄) 염모(冉牟)가 크게 활약하여 모두루 일가족을 중흥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이 묘지명에는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이름은 지워져서 알 수 없지만, 그들의 관등이 대형이었음을 알 수 있다. 광개토왕대에 이르러 모두루는 할아버지의 공에 인연하여 왕의 은혜를 받아 동명성왕모두루 일족의 출신지인 북부여의 수사로 파견되었다.

그뒤 임지에서 광개토왕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멀리서 슬퍼하였다고 한다.

이밖에 모두루에 관해서는 묘지명의 결락으로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묘지명의 문맥으로 보아 염모 이후에 모두루 일족이 왕권에 밀착되어 대대로 중용되었으며 세습적으로 북부여를 지배하였다는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

[참고문헌]

韓國金石全文(許興植編, 亞細亞文化社, 1984)
通溝 上(池內宏, 圖書刊行會, 1979)
牟頭婁塚とその墓誌(佐伯有淸, 七支刀と廣開土王碑, 吉川弘文館, 1977)
牟頭婁一族と高句麗王權(武田幸男, 朝鮮學報 99‧100합집, 1981)
高句麗の金石文(田中俊明, 朝鮮史硏究會論文集 18, 1981)

[집필자]

권덕영(權悳永)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