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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와(金蛙)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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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부여
활동분야왕실 > 왕

[상세내용]

금와(金蛙)
생졸년 미상. 고구려 동명성왕 신화에 나오는 동부여의 왕.

서기전 1세기에 활동한 것으로 보이며, 그의 행적은 고구려 시조인 동명성왕의 신화를 전하고 있는 『삼국사기』『삼국유사』, 그리고 이규보(李奎報)의 「동명왕편(東明王篇)」에 전해지고 있다.

부여왕 해부루(解夫婁)는 늙도록 아들이 없어 산천에 후사를 구하러 다녔다.

그러던 중 곤연(鯤淵)이라는 연못가의 이상한 돌 밑에서 금빛나는 개구리(또는 달팽이) 모양의 아이를 발견하고 그를 하늘이 준 자식이라 생각하여 데리고 가서 키웠다. 금와라는 이름은 바로 금빛나는 개구리 모양을 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뒤 태자로 책봉되어 해부루를 이어서 부여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태백산 남쪽의 우발수(優渤水)에서 하백(河伯)에게서 쫓겨난 하백의 딸 유화(柳花)를 발견하고 궁중으로 데려왔다.

그런데 유화가 이상하게도 알을 낳자 이를 버리게 하였다. 그러나 곧 알의 신비함을 인정하고 유화에게 돌려주었는데, 이 알에서 주몽이 탄생하였다. 그의 일곱 아들들이 주몽을 시기하여 그를 처치할 것을 건의하였지만 금와는 듣지 않고 주몽으로 하여금 말을 기르게 하여 그 뜻을 시험하고자 하였다.

그뒤 주몽이 달아나자 그를 추격하는 군대를 파견하였지만 잡지는 못하였다. 주몽고구려 건국을 위하여 남쪽으로 떠난 후에 유화가 24년에 죽자 태후(太后)의 예로서 장사를 치러주었다. 그의 사후 왕위는 아들인 대소(帶素)에 의하여 계승되었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三國遺事
東國李相國集
廣開土王碑文

[집필자]

서영대(徐永大)
대표명금와(金蛙)
성명금와(金蛙)
왕명금와(金蛙)

성명 : "금와(金蛙)"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歷代總要v03在玄菟北千餘里東接挹婁西接鮮卑南接高句麗北有弱水地方二千里○檀君子解夫婁避箕子立㕵於扶餘夫婁薨子金蛙嗣傳國至高句麗文咨王四年甲戌降自周武王己卯至此一千六百十六年
歷代總要v03姓高氏名朱蒙東扶餘王金蛙得女子柳花於太白山今妙香山南爲日影所照有娠生一大卵有男子破殼而出七歲自作弓矢百發百中扶餘以善射者爲朱
東國歷代總目v01蒙自謂以天帝子乘日光而生故改姓爲高二說不同故兩存之初東扶餘王解扶老無子得小兒於鯤淵金色蛙形喜而養之名金蛙蛙得河伯女柳花於優渤水幽於室中爲日影所照有娠生大卵一男子破殼而出骨表英偉年甫七歲自作弓矢發無不中扶餘
歷代帝王紀年v01○漢元帝永光五年弁韓以其國降新羅是歲高句麗始祖高朱蒙立先是東扶餘嗣王金蛙得女子於太白山南名柳花太白山卽妙香山在熙川郡幽室中爲曰所照引身避之日影又逐而照之因有娠生一卵蛙欲剖之
歷代帝王紀年v01生小兒或云鯤淵金色蛙形收養之後爲卒本扶餘王壻移都東海濱國號東扶餘與新羅始祖竝世在位十八年東扶餘王養子金蛙得河伯女柳花優渤水幽於室中照日影生一大卵男子破卵而出骨表英偉七歲自作弓矢無不中俗言善射者謂朱蒙故因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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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