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완벽(趙完璧)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70C644BCBDU9999X0 |
자(字) | 중국(重國) |
생년 | ?(미상)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배천(白川)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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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 조계종(趙繼宗) |
출신지 | 진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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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정보]
[상세내용]
조완벽(趙完璧)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배천(白川). 자는 중국(重國). 진주 출신. 조계종(趙繼宗)의 아들이다.
1549년(명종 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정유재란 때 왜군의 포로가 되어 일본 경도(京都)로 잡혀가 복역하였다. 왜상(倭商)들에게 강제로 이끌려 1604년(선조 37) 이후 세 차례나 안남(安南)에 가서 진기한 사물을 견문하였고, 여송(呂宋: 필리핀)‧유구국(琉球國) 등에도 다녀왔다.
1607년에 회답사(回答使) 여우길(呂祐吉) 등이 일본에 갔을 때 그의 본국송환을 간청하여 10년 만에 돌아왔다.
학문이 뛰어났다.
1549년(명종 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정유재란 때 왜군의 포로가 되어 일본 경도(京都)로 잡혀가 복역하였다. 왜상(倭商)들에게 강제로 이끌려 1604년(선조 37) 이후 세 차례나 안남(安南)에 가서 진기한 사물을 견문하였고, 여송(呂宋: 필리핀)‧유구국(琉球國) 등에도 다녀왔다.
1607년에 회답사(回答使) 여우길(呂祐吉) 등이 일본에 갔을 때 그의 본국송환을 간청하여 10년 만에 돌아왔다.
학문이 뛰어났다.
[참고문헌]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芝峰類說
國朝人物考
芝峰類說
[집필자]
조정기(趙楨基)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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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