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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수(金福洙)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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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항일기
활동분야사회 > 사회주의자

[상세내용]

김복수(金福洙)
생졸년 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1년 9월 전라남도 광주(光州)청년회가 결성되자 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4년 전라북도 화호리청년회(禾湖里靑年會) 서무부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1926년 1월 삼각독서회(三角讀書會) 서무부위원이 되었으며, 2월 전라북도 부안군(扶安郡) 백산면(白山面) 원천(元川)에서 개최된 제1차 원천소작동우회(元川小作同友會)에서 임원이 되었다. 3월에는 삼각노동연맹 결성준비원장을 맡았고, 4월에는 전북노동연맹 집행위원을 맡았다. 또 전라북도 정읍(井邑) 이평(梨坪)노동친목회 창립대회가 개최되자 자산청년회 대표로서 참석하였으며, 10월에는 정읍 화호리농민동맹위원이 되었다.

1927년 9월에는 조선농민총동맹 중앙위원이 되었으며, 1928년 3월에는 반일통일전선조직인 신간회(新幹會) 간사에 임명되었으며, 5월경부터는 정읍청년동맹에서 사회주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9년 4월부터 1945년 8‧15 광복 때까지 동아일보 정읍 화호지국을 경영하였다.

광복 후 1945년 11월 전국인민위원회 대표자대회가 개최되자 전라북도 부안을 대표하여 참석하였다.

[참고문헌]


[집필자]

이원배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