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우(李光雨)
[상세내용]
이광우(李光雨)
1925년 3월 19일~2007년 3월 26일. 일제 강점기 애국지사. 출신지는 부산광역시이다.
1942년 5월에 일제의 식민 통치에 대한 울분을 품고 초등학교 동창 여경수(呂敬守) 등 5명과 함께 비밀결사 조직인 친우회(親友會)를 조직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한국에 대한 일본의 강제 공출과 징용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친우회는 일제의 전쟁 수행을 방해하기 위해 군수품 제조 공장인 조선방직(朝鮮紡織)주식회사를 파괴할 계획을 세우는 동시에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 모금과 일제의 주요 군사시설 파괴를 추진하였다.
그러나 1942년 조선독립의 필연성을 설명한 전단을 공장‧기숙사‧시장‧부두 등에 살포하다가 발각되어 1943년에 조직원들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44년에 일본 경찰로부터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45년에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단기 1년, 장기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이하였다. 당시 동지 여경수는 모진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이러한 공훈을 인정받아 200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슬하에 2남 4녀를 두었다.
묘소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3묘역이다.
1942년 5월에 일제의 식민 통치에 대한 울분을 품고 초등학교 동창 여경수(呂敬守) 등 5명과 함께 비밀결사 조직인 친우회(親友會)를 조직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한국에 대한 일본의 강제 공출과 징용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친우회는 일제의 전쟁 수행을 방해하기 위해 군수품 제조 공장인 조선방직(朝鮮紡織)주식회사를 파괴할 계획을 세우는 동시에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 모금과 일제의 주요 군사시설 파괴를 추진하였다.
그러나 1942년 조선독립의 필연성을 설명한 전단을 공장‧기숙사‧시장‧부두 등에 살포하다가 발각되어 1943년에 조직원들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44년에 일본 경찰로부터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45년에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단기 1년, 장기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이하였다. 당시 동지 여경수는 모진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이러한 공훈을 인정받아 200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슬하에 2남 4녀를 두었다.
묘소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3묘역이다.
[참고문헌]
[집필자]
도태수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