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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金在奎)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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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905(광무 9)
졸년?(미상)
시대항일기
활동분야사회 > 사회주의자

[상세내용]

김재규(金在奎)
1905년(광무 9)∼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 단천(端川)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도 태어났다.

광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농우청년회에서 운영하던 서당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27년 10월 광천면민대회를 주도하며 면(面) 행정 처리의 부당함에 대해 항의하였다. 같은 해 12월에 열린 단천청년동맹 창립대회 사회를 보았다.

이후 반일통일전선조직인 신간회(新幹會) 단천지회 간사‧단천청년동맹 집행위원 등을 역임하고 러시아로 갔다가 1929년 9월 귀국하였다.

귀국 후 조선일보 단천지국 기자생활을 시작하였으며, 1930년 1월에는 일제의 집회금지 반대투쟁을 주도하였다. 같은 해 10월에는 조선공산당 단천야체이카 소속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2월에는 단천농민조합 결성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집행위원장을 맡아 일제 항거에 앞장섰다.

1931년 2월 신간회 단천지회 대표대회에서 서기직을 맡았다. 같은 해 3월 이주연(李周淵)과 함께 앞장서서 농민들의 이익을 지켜주기 위한 남대(南大)수리조합비 징수문제와 사방공사 토지매수의 부당함 등의 문제 해결에 힘쓰던 중, 일제에 의한 ‘단천농민조합 탄압 사건’ 때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33년 10월 함흥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및 소요 등으로 7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함흥형무소에 복역하던 중 폐결핵에 걸렸다. 수감 중에 토한 피로 형무소 측의 인간이하의 대우와 혁명적 표어들을 감옥 벽에 쓰며 만세를 부르짖는 등의 행위로 인해 추가로 1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945년 8월 석방된 후 함경남도인민위원회 좌익 조직 결성을 주도하였다.

[참고문헌]

동아일보(1936.5.31) 외
두산백과(http://www.doopedia.co.kr/)

[집필자]

박상수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