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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곤(李元坤)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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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903(광무 7)
졸년?(미상)
시대항일기
활동분야사회 > 사회주의자

[상세내용]

이원곤(李元坤)
1903년(광무 7)∼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의주읍(義州邑)이다.

서울 중앙기독교청년회관(中央基督敎靑年會館) 고등과를 졸업하고 유학을 떠난 중국 남경(南京) 금릉대학(金陵大學) 재학 시절에 중국공산당 당원이 된 후 중국공산당 집행위원직을 맡아 활동하였다.

1927년 7월 귀국한 후 조선공산당 당원이 되었으며, 반일통일전선조직인 신간회(新幹會) 의주지회 간사직을 맡아활동하였다. 같은 해에 의주청년동맹 결성에도 동참하여 집행위원직을 맡아 활동하였다.

1928년 3월 조선공산당 평남북도당위원‧고려공산청년회 평남북책 등에 선임되었으며,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 평남북기관 결성 준비를 위해 힘쓰던 중 같은 해 8월 130여 명의 당원들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30년 11월 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3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만기 복역한 후 1932년 6월 출감하였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가서 언론사에서 일하였다.

1938년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서 천진(天津) 화가(華街) 침시가(針市街)에서 상업에 종사하면서 중국공산당과 내통하며 조선공산당 ML파 간부로서 계속 활약하였다.

[참고문헌]

동아일보(1932.6.25) 외
소화사상통제사자료
일제하사회운동사자료집

[집필자]

박상수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