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석(趙庸錫)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870C6A9C11DB1861X0 |
| 생년 | 1861(철종 12) |
| 졸년 | 1920 |
| 시대 | 조선후기 |
| 활동분야 | 호국 > 독립운동가 |

| 출신지 | 평안북도 정주 |
| 공훈 | 건국포장 |

[상세내용]
조용석(趙庸錫)
1861년(철종 12)∼1920년.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정주 출신.
경술국치 후 1911년 동지들을 규합하여 항일투쟁을 하다가 일본경찰에 쫓겨 만주로 건너갔다.
1918년 통화현(通化縣)에서 항일민족교육기관인 배달학교(倍達學校)를 설립, 교장직을 맡아 주민들에게 항일애국사상을 고취하는 한편 군사훈련도 실시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자 통화현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고 한족회(韓族會)의 간부로 활약하였다.
1920년 일본군의 만주대학살 때 김기선(金基善)‧승대언(承大彦) 등 7명의 동지와 손자 용주(龍珠)와 함께 일본군에 붙잡혀 학살당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경술국치 후 1911년 동지들을 규합하여 항일투쟁을 하다가 일본경찰에 쫓겨 만주로 건너갔다.
1918년 통화현(通化縣)에서 항일민족교육기관인 배달학교(倍達學校)를 설립, 교장직을 맡아 주민들에게 항일애국사상을 고취하는 한편 군사훈련도 실시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자 통화현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고 한족회(韓族會)의 간부로 활약하였다.
1920년 일본군의 만주대학살 때 김기선(金基善)‧승대언(承大彦) 등 7명의 동지와 손자 용주(龍珠)와 함께 일본군에 붙잡혀 학살당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韓國獨立史(金承學, 統一問題硏究會, 1972)
독립운동사 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獨立有功者功勳錄 4(國家報勳處, 1987)
독립운동사 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獨立有功者功勳錄 4(國家報勳處, 1987)
[집필자]
신재홍(申載洪)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