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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학(趙尙學)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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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849(헌종 15)
졸년1896(건양 1)
시대조선후기
본관충주(忠州)
활동분야문신
조시곤(趙始坤)

[상세내용]

조상학(趙尙學)
1849년(헌종 15)~1896년(건양 1). 조선 말기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이고, 거주지는 평안북도 의주(義州)이다.

증조부는 조관행(趙觀行)이고, 조부는 조의록(趙宜祿)이며, 부친은 조시곤(趙始坤)이다. 외조부는 정경청(鄭景淸)이다.

1879년(고종 16) 식년시 병과에 30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지평(持平)‧부사과(副司果)‧교리(校理) 등을 역임하였다.

1882년(고종 19) 무당이 사당을 만들고 자칭 관우(關羽)의 딸이라며 순진한 백성들을 현혹하는 일을 금지시켜 달라는 상소를 하였다. 같은 해에 급변해 가는 세상으로 인해 거짓 소문들이 떠돌아다니며 백성들이 조정을 믿지 못하고, 국가 재정은 바닥이 난 상태에서 불에 탄 지 한 달이 넘은 육상궁(毓祥宮)을 다시 재건하지 못하고, 임금이 옮겨갈 계획을 잡았던 경복궁(景福宮)은 경비 때문에 계획을 없었던 것으로 처리한 때에 부처를 모신 사찰 수리를 급선무로 삼는 것은 옳지 않다며 육상궁과 사당 수리에 먼저 힘쓸 것을 상소하였다가 파직을 당하고, 유배까지 갔다가 풀려났다.

1884년(고종 21) 부사과에 재임 시절 새로운 의복제도를 만들어 반포할 것을 청하여 뜻을 이루었다. 1896년(건양 1) 교리 재임 시절 평소 정직한 관직 생활로 탐관오리들로부터 미움을 받아왔었는데, 포악하고 위세 등등하던 평양진위대정위(平壤鎭衛隊正尉) 민영재(閔泳宰)와 참위(參尉) 천응성(天應聖)에게 총살을 당하였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高宗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