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효린(方孝隣)
[상세내용]
방효린(方孝隣)
1843년(헌종 9)~미상. 조선 말기 문신. 본관은 온양(溫陽)이다.
증조부는 방현택(方顯宅)이고, 조부는 방치수(方致壽)이다. 부친 방찬주(方贊周)와 모친 고성대(高聖大)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865년(고종 2) 식년시에서 병과 10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이후 지평(持平) 등을 역임하였다.
1874년(고종 11)에 평안도청북암행어사(平安道淸北暗行御史) 심동헌(沈東獻)을 통해 어천찰방(魚川察訪)으로 재직했었을 때 저질렀던 실정(失政)이 발각되어 처벌을 받았다. 1876년(고종 13)에는 재차 지평으로 재직하였다. 1878년(고종 15)에 연서찰방(延曙察訪)으로 재직하였는데, 경기암행어사(京畿暗行御史) 이헌영(李𨯶永)을 통해 실정이 보고되어 재차 처벌을 받았다. 1882년(고종 19)에는 교서판교(校書判校)로 재직 중이었는데, 임금에게 상소를 올려 예조(禮曹)에서 궁중의 상례(喪禮)를 경솔하게 발표하여 백성을 혼란스럽게 하였다는 내용을 아뢰고, 해당 판서(判書)에 대한 탄핵을 건의하였다.
증조부는 방현택(方顯宅)이고, 조부는 방치수(方致壽)이다. 부친 방찬주(方贊周)와 모친 고성대(高聖大)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865년(고종 2) 식년시에서 병과 10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이후 지평(持平) 등을 역임하였다.
1874년(고종 11)에 평안도청북암행어사(平安道淸北暗行御史) 심동헌(沈東獻)을 통해 어천찰방(魚川察訪)으로 재직했었을 때 저질렀던 실정(失政)이 발각되어 처벌을 받았다. 1876년(고종 13)에는 재차 지평으로 재직하였다. 1878년(고종 15)에 연서찰방(延曙察訪)으로 재직하였는데, 경기암행어사(京畿暗行御史) 이헌영(李𨯶永)을 통해 실정이 보고되어 재차 처벌을 받았다. 1882년(고종 19)에는 교서판교(校書判校)로 재직 중이었는데, 임금에게 상소를 올려 예조(禮曹)에서 궁중의 상례(喪禮)를 경솔하게 발표하여 백성을 혼란스럽게 하였다는 내용을 아뢰고, 해당 판서(判書)에 대한 탄핵을 건의하였다.
[참고문헌]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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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